폭삭 주저앉은 자전거도로, 계속되는 붕괴 조짐들

[강원도 자전거여행] 지난여름 폭우로 붕괴된 춘천시 북한강 자전거도로

등록 2013.11.30 15:10수정 2013.12.0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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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댐 부근, 자전거도로 변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인어상. 1971년 시멘트로 제작했던 것을, 2013년에 들어서 청동으로 만든 동상으로 교체했다. 뒤로 하얗게 눈이 내려앉고 있는 삼악산이 보인다. ⓒ 성낙선


자전거여행을 떠나는 날(27일), 마침 눈이 내린다. 기상청 예보대로라면, 이날 1mm에서 4mm 가량의 눈이 내려야 한다. 그 정도 적설량이면 사실 자전거여행을 하는 데 크게 구애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 정도 눈이면, 내려 쌓이는 눈보다 녹아 없어지거나 바람에 쓸려 사라지는 눈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심한 날에도 자전거를 탈 때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날 한낮에 내린 눈은 폭설에 가깝다. 펑펑 쏟아진다.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눈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고 있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린다. 바람은 또 왜 그토록 거칠게 휘몰아치던지, 정면으로 날아오는 눈이 마치 모래알이라도 되는 것처럼 따갑다. 몇 시간 뒤 어떻게 변할지 모를 기상청 예보를 믿고 여행을 떠난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눈은 해가 가장 높이 떠 있을 시간에, 서너 시간가량 내린 것 같다. 그러고 나서는 먹구름이 걷히더니,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날이 갠다. 변화무쌍한 하늘이다. 싸락눈으로 시작한 눈은 중간에 함박눈으로 변했다. 눈은 땅바닥에 내려 쌓이기 전에 모두 녹아 없어졌다. 그렇게 많은 눈이 내리는데도 눈 쌓인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게 이상하다.

머리와 옷 위로 내린 눈이 녹으면서 차갑게 몸을 적신다. 제일 먼저 손가락 끝이 얼어붙기 시작한다. 아프다. 자전거용으로 만들어진 겨울장갑을 끼고 있었는데도 별 소용이 없다. 중간에 여행을 그만둘까 고민했다. 그렇지만 고민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자전거여행을 하는데, 때맞춰 눈까지 내려주는 날이 어디 그리 흔한가? '훈장'을 하나 더 다는 셈치고 여행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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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 자전거도로, 눈이 내려 하얗게 변해가는 산들. 춘천 덕두원리. ⓒ 성낙선


'아름다운 자전거 길' 이름에 금이 가게 한 4대강 사업

이번 여행은 지난여름 수해로 일부 구간이 붕괴된 '의암호 자전거길'을 다녀오는 것으로 정했다. 무너진 자전거도로를 복구하는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 있다는 소식이다. 자전거여행자들 중에, 의암호 자전거길로 지금도 여행이 가능한지를 물어오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번 여행은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현장 소식을 전하려는 목적도 있다.

의암호 둘레를 도는 자전거 길은 춘천시가 기존에 만들어 놓은 자전거도로에다 이명박 정부가 건설한 북한강 자전거도로가 연결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 길의 일부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길이고, 일부는 순환 길을 완성할 목적으로 최근에 만들어진 곳도 있다. 순환 길은 아직 다 완성된 게 아니어서 일부 구간은 아직도 공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춘천으로 자전거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의암호 자전거길'은 자전거도로로서는 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호수 주변을 삼악산 같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광경이 장관이다. 호수 안쪽으로는 '중도'나 '붕어섬' 같은 섬들이 떠 있어, 보는 위치에 따라서 매번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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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그치고 난 뒤의 의암호 풍경. ⓒ 성낙선


의암호 자전거길은 또 자전거여행 초보자들이 여행을 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급한 경사가 거의 없어 크게 무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호수를 도는 전체 자전거도로 길이가 약 30km에 불과해, 한나절이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수도 있다. 이 자전거 길은 또 '공지천유원지'나 '애니메이션 박물관' 같은 여행 명소를 두루 거쳐 간다. 여행을 하는 재미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자전거여행 코스로, 이보다 더 좋은 곳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자전거 길이 지난여름에 수해를 입으면서 큰 홍역을 치렀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순환 길 일부가 붕괴되면서, 숱한 언론의 지탄을 받았다. 순환 길 중에,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벌인답시고 만들어 놓은 '북한강 자전거도로' 일부 구간이 한여름 폭우에 폭삭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그 후로 이곳의 자전거도로는 4대강 사업이 낳은 부실공사를 대표하는 곳 중에 하나가 됐다. 어쩌다 일이 이 지경이 됐을까? 자전거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은 자전거 길에서, 부실 투성이 4대강 사업을 상징하는 길이 되기까지 채 일 년이 걸리지 않았다. 이 길이 11월 말 복구 완료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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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호 변 '북한강 자전거도로' 입구. 이 도로는 의암댐에서 신매대교까지 이어진다. 부분 통제 표지판이 서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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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새물결 표지판이 보이는 북한강 자전거도로. 붕괴 현장에 검은 아스팔트를 새로 깔아 복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난간을 세우는 공사는 아직 마치지 못했다. ⓒ 성낙선


계속해서 공사가 진행 중인 '의암호 순환 자전거길'

여행은 공지천유원지에서 시작했다. 여행을 굳이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한 것은 이곳에 최근에 만들어진 순환 길이 있기 때문이다. 공지천유원지에서 보면, 호숫가 절벽이 있는 언덕 위에 춘천MBC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예전에 자전거를 타고 호수를 돌기 위해서는 춘천MBC 정문 앞으로 나 있는 좁은 길을 지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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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MBC 뒷편, 절벽 밑을 돌아가는 의암호 자전거길. ⓒ 성낙선

그런데 올봄 춘천시가 의암호를 순환하는 자전거 길을 건설하면서, 지금은 춘천MBC가 서 있는 절벽 아래로 자전거도로가 새로 만들어졌다. 의암호 호숫가에는 이처럼 산자락 끝에 바위 절벽이 버티고 서 있어 길을 만들기 곤란한 지역이 몇 군데 있다. 춘천시는 이런 곳에도 모두 자전거도로를 개설할 목적으로, 일부 구간에서는 지금도 공사를 계속 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자전거도로 공사는 삼천동 스포츠타운에서 호숫가 절벽을 따라서, 김유정 문인비가 서 있는 곳을 연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공사가 끝나면 의암호를 여행하면서 절벽을 에돌아가야 하는 일은 훨씬 더 줄게 된다. 춘천시를 이렇게 해서 의암호 자전거 길을 좀 더 순환 길다운 길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춘천시는 이 공사를 내년 봄에 끝낼 예정이다.

북한강 자전거도로 붕괴 구간은 예정대로 복구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공사 완료 시점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탓인지,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서도 공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자전거도로 붕괴는 크게 세 군데에서 발생했다. 붕괴는 서면의 덕두원리와 현암리 사이 120여m에 걸쳐 일어났다. 붕괴는 집중호우로 도로를 받치고 있던 축대가 무너지면서 발생했다.

붕괴 지점 세 군데 중 비교적 규모가 작은 두 군데는 복구공사가 거의 완료된 상태다. 붕괴가 가장 컸던 한 군데는 마지막으로 난간을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춘천시는 이곳까지 이달 말까지 공사를 모두 완료하고, 12월부터는 자전거여행자들이 의암호 자전거길로 여행을 하는 데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없게 한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춘천시의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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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폭우로 무너진 북한강 자전거도로(왼쪽)를 복구중인 공사 현장(오른쪽). 난간를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11월 말 공사 완료 예정이다. 춘천시 현암리.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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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 자전거도로, 복구가 진행중인 공사 현장. ⓒ 성낙선


균열과 지반 침하가 계속되고 있는 '북한강 자전거도로'

춘천시의 의도와 달리, 의암호 북한강 자전거도로는 앞으로도 계속 말썽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강 자전거도로 붕괴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리고 지난여름에 붕괴가 발생한 지점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북한강 자전거도로는 도로 개설 이후, 도로 곳곳에서 표면이 벗겨져 나가는 박피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반이 내려앉는 문제도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북한강 자전거도로는 지금도 계속 내려앉고 있다. 그런 현상은 육안으로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여행 중, 덕두원리를 지나가는 자전거도로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균열을 새로 발견했다. 이 균열은 강쪽 지반이 10cm 가량 내려앉으면서 발생했다. 단순한 균열로 보이지 않는다. 이곳의 자전거도로에서는 이처럼 지반이 내려앉는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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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반이 내려앉으면서 균열이 생긴 자전거도로. 이 균열은 지난여름 수해를 겪고 난 이후에 생겨났다. 지반이 10cm가량 내려앉았다. 이 자전거도로에서 지반 침하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춘천 덕두원리. ⓒ 성낙선


이런 상태라면, 내년 여름에 또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알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자전거도로를 복구하는 공사에 매년 새로운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세상에 이렇게 한심한 일도 드물다. 이건 거의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마찬가지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붕괴가 일어난 원인을 찾아보면,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을 수립하는 것도 가능하다.

눈은 몸이 완전히 얼어붙기 전에 그쳤다. 동시에 먹구름이 걷히면서 하늘 위로 따뜻한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다행이다. 복구공사 현장에서는 함박눈이 내리면서 철제 난간을 운반하던 인부들이 공사에 애를 먹고 있었다. 복구공사도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한동안 맹렬히 퍼붓던 눈발이 그치면서, 의암호 주변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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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호 건너 눈덮인 산들이 히말라야의 설봉을 연상시킨다. ⓒ 성낙선


의암호는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이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또 그런 날대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의암호 너머로 건너다보이는 산줄기들이 머리 위로 흰 눈을 덮어쓰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히말라야 설산이라도 되는 것처럼 장엄해 보인다. 그것도 이처럼 갑자기 눈이 내리는 날이 아니고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풍경 중에 하나다.

의암호 자전거길은 다시 여행이 가능한 상태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박피 현상이 심해 도로 표면이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다는 것과 함께, 또 도로 위로 계속 균열이 발생하고 있어, 잔전거를 탈 때 꽤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덧붙인다. 자전거여행에는 안전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내년에는 더욱 더 안전한 조건을 갖춘 '의암호 자전거길'을 만나고 싶다.
#의암호 #북한강 자전거도로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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