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스페셜 '아기, 어떻게 낳을까 -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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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조산원에서 애를 낳는다고?결국 일반적인 병원출산만이 답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병원출산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아 모르고 있었을 뿐, 다른 출산의 선택지들이 가능했다. 다른 선택지가 가능함에 감사함을 느끼며 우리가 찾아간 곳은 한 조산원이었다.
"뭐, 조산원? 조산원에서 애를 낳는다고?" "위험하지 않겠어?" "뭐하러 사서 고생이야?""아기를 생각해!" 우리가 조산원에서 아기를 낳겠다고 할 때 대부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이랬다. 우리도 마음 한편 걱정되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조산원에서 아기를 낳은 유경험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두려움을 넘어설 용기를 얻었다. 책이든 온라인 카페든 직접 만남이든 유경험자를 만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간 조산원의 출산엔 무통주사도 유도분만제도 없었다. 아기의 평안한 출산을 위한 선택이라지만 아기 엄마가 너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또 이게 아기를 위한 길이자 엄마를 위한 길일 수 있음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산부인과 분만실은 무척 소란스럽습니다. 침대 위로는 환한 조명이 켜져 있으며 여기저기에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의료 기기들이 놓여 있습니다. 분말 대기실 침대에서 산모는 꼼짝없이 혼자서 진통을 견뎌야 하고, 분만실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아기가 나오는 시기가 되면 의사 선생님이 아기를 받기 편한 자세로 누워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산모는 불안감과 불편함을 느끼고, 아기를 낳는 내내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 <김세아의 자연주의 출산> 중)"산업적 출산의 시대에 산모는 아무런 할 일이 없다. 그저 '환자'일 뿐이다." (- <농부와 산과의사> 중)그렇다. 가만 생각해보니 일반적인 병원출산에서 엄마가 그리 편안하진 않을 것 같다. 위급상황시 안전할 수 있고, 무통주사로 통증을 없앨 수는 있겠지만 뭔가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의료 기기들과 각종 주사들이 출산의 불안을 덜어줄 수 있겠지만 어둠과 침묵이 보장되는 조산원의 출산환경이 한결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책 <즐거운 출산이야기>에서 말하고 있는 "출산하는 동안 임신부가 원할 때 먹고 마실 자유", "원하면 언제든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는 자유", "아기가 스스로 나올 준비가 됐을 때 출산할 자유", "아기가 태어난 후 계속 함께 있을 자유"를 모두 기대할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출산은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과는 다르며, 이는 하나의 집단 최면" "사랑의 결실로 생긴 아기가 고통이라는 결과로 나오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두려움을 떨쳐낸다면 대부분의 산모에게 출산은 환희와 기쁨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산모의 몸과 출산의 생리적 작용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고 몸과 마음을 준비한다면, 건강한 산모들에게 출산의 고통이란 충분히 감당해 낼만한 잠깐의 지나감입니다." (-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중)옛 할머니들은 밭에서 일하다, 장 다녀오다, 산에서 나물 캐다 혼자 애 낳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개도 고양이도 소도 그냥 새끼를 낳는다. 그 정도 경지(?)까지는 못 닿더라도 "어머니와 아기의 생리학적 잠재능력 전체를 이용"할 수 있다면 출산이란 게 그렇게까지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은 아니리라. 진통 간격이 점차 짧아지던 그날,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나름 경쾌히 조산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감사히 순산했다.
엄마 아빠들의 선택지가 넓어지길... 그렇다면 머릿속의 새로운 출산그림과 실제의 출산은? 다르지 않았다. 어둠과 침묵이 있는 조산원의 방은 엄마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조산사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호흡을 조절하기도, 자세를 바꿔보기도 했다. 허나 어디까지나 안내의 느낌. 여전히 주인공은 엄마였다.
아빠? 아빠는 엄마의 머리맡에서 쭉 함께였다. 힘들다는 엄마의 말에 응답할 수 있고, 끙끙하는 엄마의 이마를 쓰다듬어줄 수 있고, 엄마가 힘줄 때 손을 꽉 잡아줄 수 있고, 때론 자세를 바꿀 때 다리를 쫙 당겨줄 수 있고. 아빠는 더 이상 비중 없는 조연이 아니었다.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조연이 된 것이다. 이렇게 출산에 깊숙이 함께 할 기회가 주어지다니, 놀라웠다!
놀라움은 끝이 아니었다. 아기의 머리가 보일락 말락 보일락 말락. 이내 갑자기 쑤욱. 우리 아기다! 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애쓰는 엄마 곁을 적극적으로 지킴에 더해 아기가 세상에 나오는 모습을 오롯이 내 눈에 담고 느낄 수 있다니.
잠깐 울던 아기는 곧 엄마 가슴에 안겨 고요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아기, 엄마, 아빠 우리 셋은 한방에서 나란히 누워 곤히 잠들었다. 이 시간은 내 마음에 언제이고 따뜻하게 떠오르는 행복의 순간이 되었다. 그리고 조산원에 머물던 며칠 내내 아기와 우리는 늘 함께였다. 아기와 엄마가 떨어질 일은 결코 없었다. 우리 셋은 꼭 붙어있었다.
혹여나 내가 경험한 이런 출산이 '옳다'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뱃속 아기를 끔찍이 생각하는 엄마 아빠들의 선택지가 조금은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 어떤 엄마 아빠든 각자의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을 것이다. 세상을 첫 대면할 아기에게도, 출산이란 두려움 앞에 선 엄마에게도, 옆에서 발을 동동대는 아빠에게도.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을.
적어도 우린 우리 셋에게 가장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여긴다. 출산을 경험할 모든 엄마 아빠에게 내리 쬘 축복의 순간, 우리는 그 축복의 순간을 오롯이 축복으로 맞을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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