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 가장 기본적인 인권.
노동건강연대
"전기작업이라 2인 1조로 일을 하고 있는데 회사에서 야간시간에 1인 1조로 작업을 하게 하려고 합니다. 혼자서 전기작업을 하면 매우 불안합니다. 감전위험, 사다리 타고 높은 곳 작업, 사고가 나도 후속조치가 어렵고…."일본에서 기계를 만들 때 적용되는 원칙이 있다고 합니다. 기계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만져도 위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프레스 작동법을 모르는 사람이 프레스를 잘못 만진다고 해서 기계에 손가락이 끼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경력 많은 노동자가 기계를 만질 때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안전장치를 풀어놓고 일하는 공장이 많습니다. 이래서 손가락이 잘린 노동자가 많습니다. 일본과는 다른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일을 하다가 딴 생각을 합니다. 반복해서 같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게 직장생활입니다. 당연히 딴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실수를 하기도 하죠. 딴 생각을 하지 않는 방법은 기계가 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일을 하면서 큰 실수, 작은 실수를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딴 생각을 하더라도 사고가 나지 않도록 보호하고, 안전한 장치를 만드는 것이 노동자를 채용하고 근로계약서를 쓰는 고용주의 의무입니다.
사장이 내 삶을 지배하는 관계... 자신의 '인권'을 알아야 한다이 글에선 열 개의 가이드 중에 첫 두 개를 살펴보았습니다. 담장에 만발한 개나리꽃을 발견하고서야 겨울은 이미 멀리 달아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는 봄을 두 손 힘껏 밀어내고 싶은 날입니다. 기업 회장이라는 자가 일당 5억 원짜리 종이봉투 만들기 노역을 한다는 뉴스가 터지는 동안, 조선소에서 철로에서 고속도로에서 노동자들이 죽었다는 기사도 조그맣게 실렸다 사라지고 있습니다.
배 만들다 족장에서 떨어지고, 기차 역사를 짓다가 열차에 치이고, 도로를 보수하다 차에 치이는 사고들이었다고 합니다. 일하는 조건, 일하는 공간의 특성 자체가 그대로 죽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죽을 이유가 될 수 없는, 성립되어서는 안 되는 인과관계로 사람이 죽었군요.
당신은 어떤가요. 별일 없나요. 당신 일터의 노동법, 근로기준법은 잘 있나요? 지키기 어려운 것이 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지켜야 할 최저선의 것이 법으로 만들어집니다. 법을 정의롭게 만들고, 그 법을 지키기만 해도, 이렇게 인권이라는 걸 공부해보자고 머리 맞대지 않아도 됩니다.
법이 보호하는 노동자의 권리는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 사장과 노동자의 계약관계가 대등한 일대일 관계가 될 수 없다는 걸 전제로 합니다. 사장이 내 월급을 정하고 기업이 내 삶의 거의 전부를 지배하는 관계입니다. 국가, 정부가 노동자에 대한 보호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면, 노동자가 한없이 작아지고 빼앗기는 관계는 브레이크 없이 질주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언론은 노동자와 기업 사이를 마치 기계적 평등이라도 있는 것처럼 교묘하게 자르고 붙여서 보도합니다. 노동건강연대는 대기업 사장님들을 고발하는 활동을 합니다. 하청노동자들이 일하다 죽는 사고가 나면 그 현장의 원청 대기업을 찾아서 대표이사를 고발합니다. 노동자가 사망한 사고현장을 언론이 보도할 때 원청 대기업의 이름은 99% 보도하지 않습니다. 사고 현장에서 가장 크게 보이는 원청 대기업의 로고도 촬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노동조합의 파업, 농성, 쟁의 기사들에는 기업 이름이 나옵니다. 노동운동을 비난하고, 기업에 유리하게 여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노동자의 생존을 지키고,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식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내가 일하는 공간에서, 내 노동이 행해지는 현장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공부해야 합니다. 생각해야 합니다. 내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인권은 지금 보편적이고도 반박할 수 없는 가치이므로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권리를 지키고자 할 때, 나의 권리를 빼앗는 상대에게도 인권을 공부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전문성을 권력으로 갖고 있으면서 그 전문성으로 노동자의 생활, 생계를 멋대로 재단하는 관료들,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법제도는 시대의 산물입니다. 힘의 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를 절대화하여 노동자를 곤경에 빠뜨리는 전문가와 정부 관료들은 목적과 수단을 뒤집지 말아야 합니다.
직업병 인정과 보상이라는 것도 사회보험·사회보장의 한 방편일 뿐입니다. 병이나 사고 때문에 불안해지는 노동자의 생활과 생계를 안정시키는 게 목적입니다. 얼마든지 넓힐 수 있고, 벽을 허물 수 있습니다. 사회보험·사회보장 제도의 기준에 맞추려고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보호하려고 제도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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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하청, 일용직, 여성, 청소년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건강하고 평등한 노동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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