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들에게 강가(ganga 갠지스)는 오염을 씻고 죄를 용서 받고 영원히 해탈하는 성스러운 곳이다. (바라나시)
박경
- 여행기에서 인도에 대한 '동경' 뭐 그런 게 느껴져요."바라나시 가기 전까지만 해도, 동남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었어요. 별 재미없다, 했는데, 바라나시 들어가니까 확 다르더라고요. 아, 이게 인도구나. 바라나시가 인도구나, 인도가 바라나시구나. 사실 제가 목도한 것은 그들의 종교적인 깊이보다는 가난한 현실에 불과해요. 껍질만 본 수준이라고 할까? 인도에서 보면, 인간과 짐승이 경계가 없이 섞여 있어요. 짐승들이 울타리가 따로 없고 섞여서 돌아다니고, 동물이 사람 같고 사람이 동물 같고, 너무 가난하고 지저분하고, 사람이 막 짐승들 속에 내깔려진 느낌.
얼마 전에, 인도에서 쓴 일기장을 들춰보고 깜짝 놀랐어요. 여행한 지 스무 날쯤 되었을 때, 이렇게 썼더라고요. 인도에 다시 오고 싶지 않다.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아요, 그때 그랬는지. 지금은 정말 다시 가고 싶은데. 우리 딸은 인도에 다시 갈 마음 전혀 없다고 고개를 저어요. 바라나시에서부터 시작된 배탈이 가라앉질 않아서 계속 고생했거든요.
- 가족 여행에는 일장일단이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주부들은 뒤치닥거리를 해야 하니 피곤할 것 같아요. "여행이 일상의 연장이라고 보면, 별로 달라지지가 않아요. 집에서 하던 주부짓 그대로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여행은 주부파업의 절호의 기회예요. 어느 날 선언했어요, 각자 옷 각자 빨아 입자고. 그랬더니, 깔끔 떨던 남편이 빨래하기 싫으니까 속옷도 입던 거 대충 다시 골라 입더라고요.
무엇보다도 어릴 때의 가족여행은 아이에게 큰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여행을 통해서 성장하는 걸 느꼈어요. 첫 해외여행에서는 호텔이 별로네, 뭐가 어떻네, 투덜대고 불평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오지마을의 보잘것없는 숙소에서도 우리보다 더 잘 적응하더라고요. 겁 많고 낯선 걸 안 좋아하는 애였는데, 지금은 너무 겁 없이 덤빌 때도 있어요.
그런데 여행이란 게 생판 모르는 사람도 만나서 친구도 되고 새로운 경험도 해야 하는 건데, 우리한테는 접근을 잘 안해요. 그래서 가족여행은 때로, 우리끼리만 매몰된 느낌, 뭐 그런 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 박경 기자님(가족)의 여행 스타일이 궁금합니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곳을 가지 않으려고 해요. 첫 해외 여행지가 프랑스였는데, 파리의 한 호텔에서만 1주일을 묵었어요. 한 도시에만 머무르는 거, 잡스럽지 않고 그 도시에 녹아드는 기분, 참 좋았어요. 계속 같은 길 왔다리 갔다리, 어디에 가게가 있고 어디쯤에 꽃집이 있고 버스가 어디를 거쳐서 어디로 가는지 다 알게 되니까 정도 들고 친밀감도 생기고 눈에 선하고.
또 밤늦도록 돌아다니지는 않는 편이에요. 저녁 때 숙소로 와서 일기 쓰고 그날 정리하고. 아침도 서두르지 않고 느지막이 일어나고. 그러다 보니 하루 세끼 챙겨 먹는 것도 스트레스고. 낯선 외국에 가서 식당 찾아가는 것도 관광지 한 곳 찾아가는 것처럼 큰일이잖아요. 때에 따라서 하루 두 끼도 충분하더라고요. 여행이 거듭될수록 게을러져요, 느긋해져요. 게으른 여행이 진화된 여행이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 지금까지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진 않으셨지만 꾸준히 글을 쓰셨어요. 오마이뉴스에 계속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면요?"사실, 지난 번 이집트 여행기를 끝으로 그만 쓰려고 했어요. 그래서 마지막회 한 회를 일부러 쓰지 않기도 했어요. 마무리도 안 짓고 다음번 새로운 여행기 쓰기는 좀 웃길 테니까. 그런데 이게 중독이 된 건지, 여행을 다녀와서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스멀스멀 마음이 동해요. 전 딱 세 가지 이유에서 여행기를 올려요. 제 여행을 기록하고 정리해 두고 싶은 마음에서, 여행기를 쓰는 동안 한 번 더 여행하는 행복을 누리고 싶어서, 제 여행의 추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와 여행기를 꼽자면. "얼핏 떠오르는 곳은, 작은 티벳 '샹그릴라' 정도. 사람들 눈빛이 정말 순박하거든요.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안 좋은 소식을 들었어요. 중국 군대가 투입되고 티벳 사람들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죽어가는. 그게 참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나요.
특별했던 여행기는 없는데, 베네치아 여행기 썼을 때 어떤 분이 원고료를 만 원이나 주셨어요. 좋은 여행기 올려 달라고 격려해 주셨는데, 그게 참 미안하고 부담스러웠어요. 베네치아 여행기는 두 편으로 끝냈거든요. 양심에 찔려서 원고료를 돌려 드려야 하나 마나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 앞으로 어떤 여행기를 쓰고 싶으신가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 가서 스쳐 지나가지 않고 머무르기도 하는, 일상처럼 살아보는 그런 여행을 그려 봅니다. 너무 알려진 곳도 아니고 너무 오지도 아닌, 그저 그런 나라의 그저 그런 작은 마을에서 그저 그런 사람들이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과 감흥을 나눌 수 있는 여행기라면… 그저 그럴 것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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