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수학여행 '악몽'이 떠오릅니다

9명 사망자 낸 1990년 수학여행 사고... 변함없는 언론과 정부

등록 2014.04.20 19:13수정 2014.05.0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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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세월호에서 구조된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지난 16일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 차려진 응급환자 진료소에서 치료받고 안정을 취하고 있다. ⓒ 이희훈


며칠째 머리가 무겁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 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탄 세월호가 바다 한 가운데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날 이후 어렵게 잊고 있던 옛 기억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습니다. 수학여행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할까봐 가슴 졸였던 가족의 심정을 어찌 다 헤아릴까요? 하지만 잠시나마 수학여행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이가 내 동생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을 졸였던 악몽이 떠오릅니다. 이 시점에 이런 글을 쓰는 것도 고민이 되지만,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이가 앞으로는 더 없기를 바라봅니다.

가족의 심정 어찌 다 헤아려 볼수 있을까요?

지난 1990년 4월, 한 살 차이 나는 제 동생은 당시 중2였습니다. 그날 동생은 한껏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교길에 친구와 들렀던 분식점 아줌마가 텔레비전을 보며 하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악몽 같은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야야~ 너네 저 학교 학생들이지? 오늘 야들 수학여행 갔었지?"
"예, 그런데요?"
"저거 봐라, 오늘 수학여행 간 너희 학교 아이들이 탄 버스 한 대가 전복됐다고 하네. 그 버스에 탄 아이들이 많이 다쳤대... 죽은 애들도 있다던데..."
"예?"


이른바 안양 OO여중 수학여행 버스 전복사고. 이 사고로 학생 등 9명이 사망하고 23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 나온 버스는 뒤집힌 듯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어떤 정신으로 집에 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텔레비전 앞을 지키며 수학여행을 떠난 동생에게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학교에 전화도 해 보았지만, 몇 반 버스가 그렇게 됐는지 확인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엄마와 나는 얼음이 되어 텔레비전에 사망자 명단이 뜨고, 버스가 뒤집힌 장면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공교롭게도 동생 반이었던 버스가 사고 났다는 뉴스를 보고 또 한 번 오열했지만 정신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동생이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텔레비전 뉴스만 붙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뉴스를 봐도 정확히 몇 명이 수학여행을 갔는지,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사고가 난 아이들이 몇 명 정도 되는지 등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 동생이 안전하게 잘 있다는 전화를 받기까지 엄마와 나는 손을 꼭 붙잡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동생은 사고가 난 버스에 타고 있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그때, 5년 치 애간장을 다 태웠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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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불빛' 켜진 단원고 운동장 제주도 수학여행에 나선 뒤 '세월호' 침몰사고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과 인솔교사들이 실종되어 일부는 시신으로 발견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7일 오후 비가 내리는 단원고 운동장에서 수백명의 학생들이 '조금만 더 힘내자' '모두가 바란다. 돌아와줘' '희망 잃지마'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 권우성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화가 없다는 게 정말 놀랍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 심각해 보입니다. 처음 사고 소식을 보도할 당시,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선실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동영상이나 당시 상황에 대한 카톡 내용이 생중계되는 것 등은 사고자 가족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가슴을 더욱 멍들게 하는 것입니다. 25년 전 그때 기억으로 뉴스를 지켜보는 저도 가슴이 떨리고 저려오는데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지금도 애간장을 태우고 있을 안산 단원고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구조에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날이 저물어 가는 걸 보는 가족들의 심정은 어떨지, 저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제발 무사히 잘 돌아오길 하늘에 대고 기도할 뿐입니다.

제발,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해 봅니다

이번 사고로 전국에 예정됐던 수학여행이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1994년 그때도 그 사건 후 수학여행이 많이 취소됐습니다. 과연, 올해 수학여행만 취소하면 앞으로 일어날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까요?

25년 전 그날 밤, 학교에는 사고로 죽은 학생들을 위한 빈소가 차려졌습니다. 낯익은 후배들의 영정사진이 걸리고 아이들이 공부했던 교실에는 짙은 향이 가득했습니다. 어둑어둑해진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였고, 학생과 부모들은 수학여행을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학생들을 기다렸습니다. 그 공포스러울 정도로 아팠던 기억이 다시 떠올라 머리가 무겁습니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가족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요? 제발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해 봅니다. 제발.
#수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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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유를 꿈꾸는 철없는 남편과 듬직한 큰아들, 귀요미 막내 아들... 남자 셋과 사는 줌마. 늘, 건강한 감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 남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수련하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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