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으로 만난 '이웃 아이들'... 마주 볼 수 없었다

동네 마트에 붙어 있던 쪽지... "우리 아들을 살려주세요"

등록 2014.05.01 14:02수정 2014.05.0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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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SEWOL)가 침몰되자 해경 및 어선들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 전남도청


"따르릉, 따르르릉~."


전화벨 소리에 수화기를 드니 미희였다.

"들었어? 단원고등학교 아이들이 수학여행 가다가 배가 침몰했다는 거."

미희의 목소리에는 걱정스러움이 묻어났다.

"응, 그런데 전원 구조했다는데?"
"얘는,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게 아니야, 반도 못 구했다는데? 뉴스 보고 있어?"

나는 안산에 산다. 수화기를 귀에 댄 채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에서는 뉴스특보로 세월호 침몰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응, 그래. 알았어. 나중에 연락하자."

통화를 하면서도, 끝내고 나서도, 나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바다 한가운데 반쯤 기울어진 채로 누워 있는 배, 그 옆으로 붙어 있는 서너 척의 배들로 옮겨 타는 사람들, 하늘 위 헬리콥터에서 내려주는 바구니에 몸을 싣는 아이들…. 처음 보는 배 침몰 사고 현장의 다급함에 아이들의 생사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두 구조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장의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살아나온 아이들의 모습을 보던 나는 갑자기 둔기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아이들은 자신들이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끼기보다는 배 안에 남아 있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 어쩔 줄을 몰라 했기 때문이었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고 코끝이 싸해졌다.

집 안 청소를 하면서도, 빨래를 하면서도, 저녁식사 준비를 하면서도 눈과 귀는 텔레비전 화면을 쫓고 있었다.

울음을 잊고 살아왔는데... 자꾸 펑펑 울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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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경기 안산시 상록구 월피동에 있는 A마트. 이 가게의 주인인 강아무개 학생의 부모는 수학여행을 떠난 아들의 사고 소식을 접하고 황급히 셔터문을 내렸다. 강아무개 학생을 아는 동네이웃과 학생들이 써붙인 절규 "단원고 우리 ○○이를 지켜주세요" 메모가 닫힌 셔터문 위를 가득 메우고 있다. ⓒ 남소연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다시 사흘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모두 구조되리라는 바람과는 달리 사망자 수가 늘어가고, 배 안에 갇혀 있던 아이들과 부모들의 애잔한 사연을 접하면서 나는 곧잘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여간해서는 울음을 터뜨리는 일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버텨내다 보니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울고 싶어도 이를 앙다무는 것으로 대신했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눈이 큰 만큼 겁도 많고 울음도 많아 울보라고 불리곤 했지만, 그것도 다 옛날 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꾸 눈앞이 흐려지고 코끝이 싸해지고 급기야는 펑펑 울게 되는 것이다. 마치 꽁꽁 묶었던 매듭이 풀린 것처럼.

"엄마, 초등학교 앞 ○○마트 집 아들이 단원고등학교 학생이었대요. 마트 철문 앞에 '우리 아들 △△이를 살려 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거기에 아이들이 메모지를 붙이고 있어서 저도 써놓고 왔어요. 꼭 살아 돌아오라고…."

스물네 살 우리 아이도 눈시울이 빨개졌다. 그런 아이를 보니 다시 또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 그 사이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 한 자락, 그 밑으로 서 있는 나무들의 가지마다 고개를 내민 초록빛 잎들…. 이렇게 화사한 봄날, 열여덟 번째 봄을 맞이하며 햇빛에 반짝이던 초록빛 잎들이 푸르른 꿈을 미처 피워내지도 못한 채 떨어지고 있다.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친구를 위해 벗어주는 의로움으로, 서로 구명조끼의 끈을 묶어 마지막 숨을 함께하는 영원으로, 학생증을 손에 꼭 쥐는 것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애절함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거센 물결을 일으키는 바다, 그 가운데 섬처럼 자리 잡았던 배의 꽁무니마저 삼켜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무심한 바다. 그 바다를 마주하고 아이들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선착장 끝에 앉아 아이와 가장 가깝게 있으려는 애틋함으로, 불러도 대답 없는 자식의 이름을 수없이 되뇌는 그리움으로,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는 절절함으로….

"영진이 교회 동생은 아직 못 찾았대요... 어떡해요 미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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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 안산 분향소 추모 물결 '세월호 침몰사고' 10일째인 25일 오후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임시 합동분향소에 조문객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 유성호


그렇게 열흘이 지나고, 다시 또 열하루째 날이 밝아오고….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을 구해내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답답함으로, 살아 있으리라는 희망은 싸늘한 주검을 마주하는 절망감으로 바뀌었고, 급기야는 실종자보다는 사망자에 이름이 오르기를 바라는 헛헛함까지. 거기에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희생당해야 했던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은 죄스러움으로 얼굴조차 들 수 없을 정도였다.

그뿐인가? 아이들을 구해내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안위를 우선으로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으니…. 지금도 차가운 바닷물 속에 갇혀 있는 우리의 아이들은 이런 어른들의 모습에 또 한 번 절망했으리라. 그리고 또 하나,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학생은 학생이고 선생님은 선생님이라는 사실이다. 선장의 말을 끝까지 믿어 자리를 지켰던 아이들, 자신보다는 제자를 위해 곁을 지켰던 선생님들을 보며 어쭙잖은 잣대로 요즘의 학생들을, 선생님들을 저울질 하던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실감하게 된다.

장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던 나는 목적지를 한참이나 지나도록 걷고 있었다. 발길을 멈춘 곳은 ○○마트 앞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색색의 메모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던 철문은 휑하니 비어 있었고 커다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우리 △△이가 돌아왔습니다. 싸늘한 주검으로….

가슴 속이 뜨거워지더니 이내 눈물을 쏟아내고야 만다.

"엄마, 사은이 친척 동생도 시신으로 찾았대요. 영진이 교회 동생은 아직도 찾지 못했대요. 어떻게 해요? 아이들한테 미안해서…."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은 아이를 품에 안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깨를 토닥일 뿐.

26일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있는 합동 분향소에서 150여 명이 넘는 아이들을 마주하고 서니 아이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이 싸늘한 공간이 맑고 해맑은 아이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허망한 손길로 국화꽃을 올리면서도 자꾸 미안해졌다. 정작 아이들은 원하지도 않는데 우리들이 눌러 앉히는 것 같아서….

휘적이는 걸음으로 밖으로 나오니 뿌옇게 흐려진 눈앞으로 거리의 초록빛 나뭇잎들이 너울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마트 집 △△이의, 우리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처럼.

나는 나뭇가지 끝에 노란 리본을 걸어 놓았다. 아이들의 꿈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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