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가 들려 연행되는 신학대생'세월호 참사 관련 특검 실시'와 '무능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감리교신학대 학생들이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에 올라가 기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강제연행되었다.
권우성
감리교 신학대학교를 입학하고 2년 차 즈음,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동아리 동생 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 놀라 계단이 있는 복도로 뛰쳐나갔습니다.
"형,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동생 놈이 붙잡은 수화기에서 벌벌 떨리는 소리가 제 휴대폰으로 전해졌습니다. 그 친구는 어렸을 적 아버지를 여의고, 편부모 아래에서 신앙을 통해 성장한 친구였습니다. 성경도 기도도 열심히 했죠. 늘 저를 부끄럽게 했던 동생이었습니다. 그러던 친구에게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그런 일이 생긴 겁니다. 나중에 듣기로는 지병이 있으셨으나,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치료를 하지 않으셨다고, 결국 그 병으로 소천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틀 밤을 새워주던 날 밤, 함께했던 친구로부터 동아리 동생의 소식을 한 가지 더 듣게 되었습니다. 집안의 가난 때문에 동기들의 식권을 빌리기도 하고, 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고.
장례가 정리가 되고 시간이 좀 흘러 선배들과 함께 그 동생을 위로도 할 겸, 여행을 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밤, 돌아가면서 진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한 선배가 동생에게 물었습니다.
"너 신학 계속 할 수 있겠어?"동생은 앞에 있던 술잔을 비우고 답했습니다.
"형님, 제가 이렇게 아픈데,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아픈 걸까요?"이 친구는 대한문으로, 밀양으로, 성소수자들의 모임으로 갔습니다. 노동자들과 함께 마시고 울고 떠들었습니다. 학교보다는 밖에서 그렇게 지냈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이 동생을 벗 삼아 함께했습니다. 노숙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쌍용차 희생자들 분향소에서 같이 울고, 용산참사 유족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같이 분노했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이 땅의 아픔들을 목격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아픔들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에 공감하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명, 한 명 친구들을 만났고 결국 지난 5월 8일에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에 같이 올라가게 될 동지들을 얻었습니다.
사실, 8명의 인원들 중 지난 대선에서의 국가기관 개입에 분노하면서, 감신국정원사태대책모임을 꾸렸던 친구들이 있습니다. 저 또한 그 모임들을 준비하고 활동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민중의 목소리는 결코 중심정치 영역에서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다른 신학교들과 연대하는 자리도 만들고, 학내에서 교수님들과 신학적으로 이를 규탄할 정당성도 마련하는 자리도 만들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성공회성당 앞에서 선언문도 낭독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만만치 않았습니다. '노무현 NLL 발언', '이석기 내란음모 혐의', '진보당 정당해산청구' 등 불법선거로 존립 자체가 불안한 정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더군요. 촛불은 정권의 정치 놀음 앞에 하나둘씩 꺼져갔습니다. 우린, 그 광경을 목격하고 무기력에 빠져 있었습니다.
작은 돌멩이가 되어 침묵하는 호수에 물결을 일으킬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