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나와... 한번이라도 안아보자"
실종자 가족들, 진도 밤바다 통곡

[현장] 사고 29일째인 14일 0시, 실종자 가족들 밤바다에 통곡 쏟아내

등록 2014.05.14 08:16수정 2014.05.1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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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다 향해 목 놓아 이름 부르는 실종자 가족 세월호 침몰사고 29일째인 14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사고해역을 향해 실종된 가족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하루빨리 돌아오기만을 기원하고 있다. ⓒ 유성호




"아빠 우울증 있다는 거 알잖아? 아빠 힘들게 하지 말고 빨리 나와. 아들 뼈다귀라도 보고 싶어. 진짜, 보고 싶다. 너 때문에 잠도 못 자. 내가 싫어서 안 나오는 거니? 그럼 엄마와 동생을 위해서라도 나와. 제발 나와."

아버지는 방파제에 주저 앉았다. 두 손으로 난간을 꽉 쥐었다. 그리고 꿈에라도 보고 싶은 피붙이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어선들의 불빛이 희미했지만, 검은 바다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난간에는 '극락왕생'이 적힌 연등이 걸려 있었다.

사고 한 달 가까이... "한마음, 한뜻으로 불러 보자"

13일은 음력으로 4월 15일, 보름이다. 원을 가득 채운 달은 어두운 밤바다를 비췄다. 어선 4척에서 나온 불빛도 바다를 향했다. 등대길 난간에 달린 노란 리본들도 바다를 보고 있다. 기약 없는 만남을 기다리는 가족들도 바다를 보았다.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는 이날 자정을 10분 앞두고 실종자 가족 40여 명이 모였다. 실내체육관에 있던 가족들은 전세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팽목항에 있던 이들은 도착하지 못한 이들을 기다렸다. 한 사람이라도 더 '단체 행동'에 보탬이 되길 바랐다. 한 아버지는 "목소리 크게 할 수 있도록 한 명이라도 더 와서 같이 해야 한다"며 "한마음 한뜻으로 목놓아 부르자"고 말했다.

그들이 자정을 택한 것은 실종자들의 원혼을 불러내기 위해서다. 죽은 이들의 혼이 활동하기 시작한다는 자정, 그때를 맞춰 실종자들이 돌아오기를 기원하기로 했다. 사고 한 달 가까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를 향한 간절한 마음이었다.


가족들은 집결한 뒤 팽목항 방파제 끝으로 향했다. 자정을 넘은 14일 0시 25분이었다. 방파제 끝에는 등대에서 나오는 붉은 불빛이 깜박거렸다. 알록달록 연등이 방파제 난간에 묶여 있었다. 이곳에서 세월호 사고해역까지는 직선거리로 25km에 달한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 밤바다에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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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놓아 부르는 실종자 가족 "빨리 집에 가자" 세월호 침몰사고 29일째인 14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사고해역을 향해 실종된 가족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하루빨리 돌아오기만을 기원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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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절하는 실종자 가족 "우리 아들과 딸 돌려주세요" 세월호 침몰사고 29일째인 14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한 실종자 가족이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은 가족의 하루빨리 돌아오기만을 기원하며 바다를 향해 엎드려 절을 드리고 있다. ⓒ 유성호


한 사람씩 이름이 호명됐다. 가족들은 어른 이름 끝에는 "빨리 오세요"를, 학생에게는 "집에 가자"를 붙여 세 번씩 불렀다. 이날 오후 수습된 시신 1구 포함해 일반인 8명, 단원고 교사 5명, 단원고 학생 16명, 총 29명의 이름을 차례로 외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는 커졌고 몇몇 가족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호명이 끝나자 통곡이 시작됐다. 가족들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난간을 부여 잡았다. 아들, 딸, 동생, 조카 등의 이름을 부르며 바다에 말을 걸었다. 한 아버지는 바다를 향해 엎드려 절을 했다.

이 자리에서 한 어머니는 쉰 목소리로 "우리 딸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데…"라며 "빨리 나와 내 딸, 보고 싶다 내 딸"이라고 불렀다. 다른 어머니는 "제발 꺼내만 달라"며 "안아보게 해달라"며 흐느껴 울었다. 한 아버지는 "엄마, 아빠 손잡고 집에 가자", "더는 못 참겠다, 어서와", "선생님 애들 데리고 제발 나오세요"라고 외쳤다.

일부 자원봉사자들도 나와 실종자가족 곁을 지켰다. 자원봉사자 정구상(59·경남 함양)씨는 "먼저 딸을 잃은 아픔이 있어서 자식 잃은 부모 마음을 이해한다"며 "세월호 참사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다 어른들 불찰이고 다시 어른들이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 "정부는 가족들 돌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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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놓아 울다 쓰러진 실종자 가족 세월호 침몰사고 29일째인 14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사고해역을 향해 목놓아 가족의 이름을 부르다가 쓰려져 경찰과 자원봉사자의 부축을 받아 구급차로 이동하고 있다. ⓒ 유성호


10여 분의 통곡이 끝난 뒤, 가족들은 팽목항 중앙의 가족지원 상황실 앞으로 모였다. 이 자리에서 가족들은 손을 들고 구호를 세 차례 외쳤다. '구조자 0명'을 기록한 정부를 향한 외침이었다.

"정부는 가족들을 돌려 달라, 정부는 선생님을 돌려 달라, 정부는 아들, 딸을 돌려 달라!"

한 어머니는 끝내 실신했다. 이 어머니는 119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아 구급차를 타고 진도 실내체육관으로 옮겨졌다. 한 아버지는 "우리가 그래도 힘을 내야 한다, 끝까지 힘내자"며 "애들 (곧) 나올 거니깐 더이상 약해지지 말고 서로 위로하면서 기다리자"며 다른 가족을 달래기도 했다.

이후 실종자 가족들은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의 숙소로 흩어졌다. 환하던 보름달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 사고 #팽목항 #실종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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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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