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11월 18일 저녁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과 해고노동자를 위한 매일 미사'가 마지막으로 열렸다. 평택으로 돌아가기 전 대한문 앞에서 만난 쌍용차 해고자 고동민, 문기주, 복기성씨.
이희훈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나는 청운의 꿈을 품었다. 그 꿈을 품고 제주를, 밀양을, 용산을, 평택을 신명나게 오갔다. 지난해 말, 경찰이 정당한 철도파업을 이유로 철도노조 위원장을 체포하겠다고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했을 때쯤이다.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경향신문> 건물 현관을 지키는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을 만나기 위해 기웃거리다가 그 꿈은 시작되었다.
내용은 이렇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 제주 해군기지 건설저지 강정마을 주민, 용산참사 유가족, 밀양 초고압송전탑 반대 밀양 주민 등이 지방선거에 뛰어들어 그들의 주장과 정책을 알려낸다. 다른 야당들의 아름다운 양보를 받아낸 후, 새누리당 후보와 1대 1로 대결하여 승리한다. 그 후, 시의회로, 도의회로, 기초단체장으로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키자는 낭만적인 꿈을 꾸었다.
왜 꼭 쌍용·강정·용산·밀양인가SKYM(쌍용·강정·용산·밀양)의 연대는 2012년 생명평화대행진과 대한문 함께살자 농성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 강정을 시작으로 전국 방방곡곡, 쫓겨나고 내몰리는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한 달 만에 우리는 수천명이 되어 서울시청 광장에 입성했다. 쌍용자동차 희생자들의 분향소 옆에 함께살자 농성촌을 차리고 그 쌀쌀했던 가을, 그 혹독했던 겨울을 함께 보냈었다.
우리는 또 함께 제주 해군기지 반대 깃발을 들고 제주 전역을 행진했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철탑 농성장을 찾았다. 우리는 함께 핵발전소와 초고압송전탑을 막으려고 밀양 송전탑 129번 현장을 올랐고, 용산참사 책임자 김석기가 사장으로 앉은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노숙을 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 평화의 섬 제주에 해군기지를 비롯한 군사시설이 들어서지 않는 세상, 누구도 자신의 삶터에서 쫓겨나지 않는 세상, 핵발전소와 초고압송전탑이 필요 없는 세상을 바라며, 다양한 삶의 역사를 가진 이들이 모여 단단하고 따뜻한 연대를 확인하며 함께 꿈을 꾸었다. 제주 해군기지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가 왜 꼭 함께 싸워야 하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세상에 쫓겨나고 내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꼭 쌍용·강정·용산·밀양만 너무 도드라진다고 책망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쌍용·강정·용산·밀양은 정리해고·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 평화를 지키는 이들의 싸움, 쫓겨나고 내몰리는 사람들의 싸움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경찰과 용역을 앞세운 공권력과 자본의 끔찍한 폭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쟁이기에 함께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믿음은 곧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SKYM 공동투쟁'이라는 고유명사를 만들어 냈다.
고민없이 시원하게 찍을 수 있는 후보, 우리가 하면 어떨까그래서 꿈꿀 수 있었다. 자본과 공권력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직접 출마하여 당선되는그 꿈 말이다. 쌍용·강정·용산·밀양의 당사자들, 연대자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술을 마시고 웃고 울었다. 각 단위의 대표들, 집행책임자들과 수차례의 공식, 비공식 모임을 가졌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의견을 구하고 조언을 들었다. 선거 자체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들도 있었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이 꼭 '출마'라는 방법 밖에 없는가라는 물음도 있었다. 좋은 생각이라는 격려와 꼭 당선시키자는 응원 역시 적지 않았다. 제주로, 밀양으로 다니는 차비에 보태라고 흔쾌히 지갑을 털어주시는 분들, 밥과 술을 사주며 선거 아이디어를 쏟아내시는 분들도 있었다.
이렇게 선거를 준비하며 나름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SKYM 후보들이 출마한다면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참여해 본 적 없었던 선거운동을 신나고 즐겁게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당은 물론이고 안철수 의원이 준비하던 신당 역시 온 마음으로 지지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기초의원 공천을 하네 마네 하면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도 선거에 대한 짜증을 더했다. 진보 정당들은 산개하여 그 영향력을 느낄 수가 없었고, 우리가 염두해 둔 지역에서의 지지도는 미약했다. 이대로라면 이번 지방선거는 정말 재미없는 선거가 될 것이 뻔했다.
언제까지 우리는 선거 때마다 별 관심이 없는 듯 한 발 뒤로 빠져서는 선거가 끝나고 나면 바꾸어야 하는 법과 제도, 시행되어야 하는 정책들을 들고 당선자들을 찾아다녀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최소한 쌍용·강정·용산·밀양 후보들이 출마하는 4개 지역의 유권자들은 고민없이 시원하게 찍을 수 있는 후보를 만들어내겠다는 바람이었다.
다른 지역의 유권자들도 마음 편하게 SKYM으로 정치후원금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도대체 얼마 만에 특정인을 드러내고 마음껏 지지하고, 아낌없이 후원할 수 있게 되는 것인가? 이 얼마나 기쁘고 신명나는 일인가? 선거 이야기를 하며 소주잔을 기울일 때면 혼자 슬며시 웃음을 짓고는 했다.
낭만적인 꿈은 좌절되었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물론 모두가 짐작하듯이 이 낭만적인 꿈은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쌍용·강정·용산·밀양의 사정이 너무 어려웠고, 전국 단위 선거를 제대로 겪어 본 사람이 하나도 없는 준비 모임의 낭만적인 의기투합은 실제 선거 준비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준비 모임에서 염두에 두었던 후보군들이 고려하지 못했던 일들로 흔들렸다. 예상하지 못했던 각 후보자 개인들의 문제가 돌출했고 '선거참여' 자체에 대한 당사자들간의 이견 등이 문제로 나섰다.
마지막까지 끈질긴 설득과 포기,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었지만 결국 SKYM 지방선거 출마전략은 미완의 꿈으로 접어야 했다. 아쉬움이 컸지만, 그래도 많은 성과들이 있었다. 투쟁하는 당사자들의 현실정치 참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진보정당에 참여하지 않은 채, 진보정당과 어떻게 연대할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2016년 전국 총선거를 기약하며 잠시 논의를 미루었지만 희망과 용기를 얻었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