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미씨님이 더 많은 이들과 오랫동안 세월호를 공유하고 싶어 만든 컴퓨터 바탕화면.
디자인미씨
- 광고 진행과정에서 선의건 악의건 여러 곳에서 접촉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NYT 광고팀'은 기관이나 언론사의 접촉을 모두 거부하셨어요. 왜 그러셨나요?"솔직히 말하면…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습니다. 광고팀이 이렇게 모인 게 세월호 때문인데 세월호가 '참사'가 된 것은 정부만큼이나 언론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NYT광고에서 정부의 무능뿐 아니라 한국 언론에 대해 신랄히 비판했던 겁니다. 진실 보도는 외면한 채 사건을 축소하고 관심을 돌리려고 하는 한국 언론을 믿을 수 없어 저희는 어느 언론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국에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느꼈다면 한국 신문에 광고를 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둘째 이유는 우리 광고팀은 모금해주신 4000여 분의 뜻을 구체화시키는 진행팀일 뿐이지 결코 주동자도 대표자도 아니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냥 보통 주부들일 뿐인데 언론을 통해 정치범, 선동꾼으로 몰리면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고요. 괜한 신상공개로 우리를 마녀사냥 하려는 사람들, 흠 잡으려는 언론들에게 먹잇감을 던져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지면을 통해 할 말은 다 했다 생각합니다. 광고에 담긴 말이 널리 전해지기를 원했지 저희에 대한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 생각했으니까요. 이 모든 것이 새벽 회의를 통한 결과였습니다."
- 광고 이후 한국 정부와 언론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평가하나요?"우연인지 모르겠지만 KBS 기자들의 자기반성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CBS 같은 언론사들도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내는 게 보였고요. 나라밖에서 강한 정부비판이 나오자 정부옹호 일변도의 언론들도 일제히 우리 광고전문을 실어주었지요. 덕분에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 번역되어 한국에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정부가 외국 여론의 동향에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뉴욕타임스> 광고 후에는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우리 광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정부도 부담을 느끼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듯이 보이더군요. 물론 지방선거가 끝나자 다시 다 덮으려는 것 같이 보여 씁쓸하지만요..."
- 외국 신문에 광고가 나간 후 비난도 거셌잖아요?"솔직히 우리팀은 광고가 나가면 모두가 신문 들고 펑펑 울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럴시간이 없더라고. 그 후 쏟아진 비난에 대처해야 했으니까요. 우리 광고에 반대하는 미국 내 한인단체들이 미국 내 한국 신문에 저희를 '종북·빨갱이'로 모는 광고들을 게재했잖아요, 미국에 몇 십 년 사신 분들도 몰랐던 수많은 단체가 연합해서 비슷한 문구로 광고를 냈더라고요. '<뉴욕타임스> 광고는 사실이 아니다', '광고팀은 종북이다', '연합단체 광고가 진짜다, 우리를 믿어라' 하는데, 그게 한국에서 하는 비난과 내용이 똑같더라고요.
우리가 종북단체의 지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우리 모금내역은 실시간으로 INDIEGOGO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투명한 운동이었습니다. 반박 광고를 한 단체들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돈을 모으고 디자인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게 아니라 그냥 '종북'이라 몰아서 매도하더군요. 모든 미주한인 매체에요. 미국 각지에 한인단체가 이렇게 많은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다행인 건, 뜻 있는 많은 교민들이 '이참에 이런 단체들을 적극 감시하자'고 이야기했다는 점입니다. 진짜 학부모는 우리 안에 있는데 학부모 모임 대표라는 분이 우리 엄마들을 빨갱이로 몰고, 한인단체 임원이란 노인이 아이 손잡고 세월호 추모 시위에 나간 엄마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는 등의 일을 겪으면서요. 한국 사회만 걱정할 게 아니라 그 축소판이 된 미국 교민 사회도 걱정해야 한다고 다들 입을 모았지요."
- 프로젝트가 기획됐던 사이트는 광고 진행 과정에서 지속적인 해킹으로 인한 게시물 삭제와 디도스로 추정되는 트래픽 증가, 그리고 광고팀을 모략하는 댓글들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겁나지 않으셨나요?"일 시작하는 초반부터 이메일 해킹을 경험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나중엔 덤덤해지더라고요. 미국 내 커뮤니티 사이트를 이렇게 공격하는 것은 중범죄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나 싶어요. 미국 사이트에도 이러는 것을 보면 한국에서는 더 하겠죠? 근데, 그런 행동이 왜 문제인지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판단력과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지금 한국 사회를 이끌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린 이 일을 하면서 생전 처음 당하는 모욕에 욕도 먹었습니다. 초기엔 겁이 났지만 나중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어느 한 순간, 겁을 주며 위협할 순 있어도 사람의 삶 전부를 지배할 수는 없다 믿습니다. 아이를 지키는 엄마의 마음으로 오히려 당당하게 우리 할 일을 했지요. 그런 낡고 오래된 방법은 우리 '화난 엄마들'에겐 통하지 않았던 거죠."
미국의 9·11, 한국의 세월호- 많은 이들이 미국의 9·11처럼 한국 사회도 세월호 참사 전후로 크게 나뉘게 될 거라고 합니다. 본인의 삶도 달라졌다고 느끼시나요?"이미 너무 많이 달라졌어요. 저는 창의력이 요구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세월호 이후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더군요. 유족들처럼 저도 세월호 사고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어야 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더는 세상을 순진하게 바라볼 수 없게 된 듯합니다. 많은 사람이 죽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는데 예전처럼 웃고 떠든다면 너무 미안하잖아요. 미국의 9·11이 '분노'가 아닌 '추모'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분노할 시간을 충분하게 주고 같이 반성하고 고치고 함께 상처를 치유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 세월호 사고는 어떤가요? 유가족이 슬퍼하는 것도 지나치다 하고 드러나는 진실에 대해 분노하면 '아직까지 그러고 있냐'고 정치적이라고 몹니다.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 사건을 제대로 추모하고 사회를 변화시켰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제2의 세월호를 막을 수 있겠지요. 고리원전 위험이나 롯데월드 주변 지반 붕괴 등의 문제를 해외에서 접할 때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국민들에게 화가 미칠까봐 너무 불안해요.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만들지 않으려면 이번에 제대로 진상규명하고 책임자 처벌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진정한 예방의 첫 단계라 믿습니다. 솔직히 이러한 사회인식도 세월호 전엔 갖지 못했는데... 세월호가 저와 같은 엄마들을 똑똑하게 만들어주었다 싶네요."
- 많은 한국인들이 세월호를 비롯한 답답한 현실에 '떠나고 싶다'고 하십니다. 미국에 사는 젊은 교민으로서 어떤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요?"한국을 떠나 이민 가버리고 싶다.' 유가족께서 하신 말씀이기도 하지요. 미국 사는 너희는 한국서 사는 일이 얼마나 각박한지 모를 테니 참견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 밖에 사는 저 같은 교민들이 왜 일도 못 하고 잠도 못 자고 우는지 아세요? 밖에서 보면 더 또렷이 잘 보이거든요. 한국의 현실이 어떤지 정확히 보도해주는 여러 해외언론들과 이번에 알게 된 한국의 '양심언론'들을 통해 다양하게 접하면서 말입니다. 한국 현실이 암담한 것은 맞아요. 저도 '이러다가 우리 대한민국이 망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두렵기도 해요.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 못하게 한국 언론들이 통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재외교포들이 느끼는 슬픔을 우리 국민들과 교류하고 싶은데 그것마저 통제되는 느낌입니다.
'현실을 떠나고 싶다', '내 나라를 버리고 싶다'고 하지만 떳떳치 못한 나라의 국민은 외국에서도 무시당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감옥에 가야지 왜 우리 무고한 국민들이 나라를 떠나야 하나요? 남의 아픔에 공감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면 대한민국은 바뀌고 더 좋은나라 될 겁니다. 착한 국민이 아니라 이 땅에 살면 안 될 사람을 쫓아내자는 생각을 하면 좋겠어요. 저희들도 힘껏 돕겠습니다.
하루 잠깐씩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