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후반, 미모의 집주인... 뭔가 억울했다

[공모-나는 세입자다] 보증금 못 준다는 집주인에 4개월 간 마음고생

등록 2014.10.25 19:05수정 2014.10.2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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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요즘 융자 있는 집들 다 그래요. 건물주들 요새 매달 이자 막기도 힘들어요."


부동산 중개인 아저씨는 그게 '흔한 일'이라고 했다. 다음 세입자가 정해지기 전에 방을 빼는 경우에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세도 아니고 고작 보증금 1000만 원짜리 월세인데, 무엇보다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도 말이다. 아저씨는 집주인도 다음 사람에게 보증금을 받아야 내게 줄 돈이 생기는 거라고 말했다. 그게 뭐 별일이냐는 듯 아저씨의 표정은 몹시 평온했다.

문제는 이미 내가 새로 이사 갈 집을 계약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한 달 동안 주말마다 발품을 팔아 구한 집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계약금까지 지불한 뒤였다. 이 집에서 보증금을 받아야 그 돈으로 새 집의 보증금을 넣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부동산 중개인마저 이렇게 말할 줄이야. 지난 2013년 2월의 일이었다.

 새 집을 구하고, 이전 원룸과의 월세 계약도 만료됐지만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중개인은 "흔한 일"이라고 했다.
새 집을 구하고, 이전 원룸과의 월세 계약도 만료됐지만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중개인은 "흔한 일"이라고 했다.플리커

문제투성이 원룸... 집주인과는 연락할 수 없었다

회사를 옮기면서 출퇴근 거리가 길어져 급하게 구한 집이었다. 융자가 꽤 있었지만 설마 문제될 일이 있을까 하고 가볍게 넘긴 게 화근이었다. 시간에 쫓겨 건물주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부동산 중개인과 계약서를 썼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 마포구의 작은 원룸이었다. 중개인 아저씨는 건물주를 대신해 건물 전체의 계약을 도맡고 있다고 말했다. 주인은 서울 어느 동네에 사는 사모님이라고만 들었다.

융자가 상당하다는 것 외에도 이 건물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더 있었다. 집주인의 정체가 베일에 싸여 있었다. 단 한 번도 집주인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연락도 닿지 않았다.


집주인이 지어 놓고 한 번도 와보지 않았다는 원룸 건물의 꼴은 으스스했다. 건물 입구의 통유리 자동문은 내가 이사 오기 전부터 고장 나 있어 양 손바닥으로 힘겹게 밀어야 움직였다. 계단에는 시커먼 먼지 덩어리가 굴러다녔다. 몇 번 돌리지도 않은 에어컨에서 물이 떨어지자 나는 계약서에 적힌 휴대전화 번호를 눌렀다.

한 중년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내가 누구인지 밝히자,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자신을 '관리인'이라고 소개했다. 자기는 그냥 일을 도와드리는 사람이라고, 사모님 대신 부동산이랑 연락하고 집세만 전해드린다고 했다. 실제로 확인해 보니 부동산 아저씨가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 역시 그 관리인 아주머니였다. 나와 집주인 사이에는 '부동산 중개인-관리인 아주머니'라는 두 단계가 존재하는 셈이었다.


수도꼭지 고장, 보일러 녹물 등등 좁은 원룸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들이 어찌나 많았는지 모른다. 거주하는 동안 집주인을 찾을 일은 끊임없이 생겼다. 관리인 아주머니는 "세입자가 알아서 좀 하라"며 어떻게든 모른 체하고 전화를 끊으려고만 했다. 불편한 통화를 거듭하는 사이 점점 속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동네가 재개발 예정지였던 건 아시죠? 이건 아가씨한테만 하는 말이지만 이번에 재개발 안 되는 걸로 결정이 났나 봐요."

그녀와 집주인은 대학 동창 사이였다. 자신이 그 건물을 사라고 강하게 권유했는데, 일이 안 풀려서 집주인에게 면목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집주인은 그 건물이라면 말을 꺼내는 것조차 싫어하기 때문에 귀찮게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집주인에게 직접 연락하는 것만은 한사코 막았다. "사모님은 바쁜 분이라 이런 일까지 챙길 형편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나는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급히 집을 구한 스스로를 책망하며 계약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월세 계약 만료 한 달을 앞두고, 나는 관리인 아주머니에게 문자를 보내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통보했다. 그녀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런데 새로운 집을 계약하고 나서 전화를 걸었더니, "부동산에 얘기해 놨으니 집 나갈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집 나갈 때까지 기다리라니요? 계약 만료되는 날 보증금 주셔야죠."
"집이 먼저 나가야 돈을 주죠. 이 아가씨가 이사도 안 다녀 봤나봐."

흥분한 나는 서울에서 월세 살이 7년째지만 계약 기간 끝날 때 보증금을 못 받았던 적은 한 번도 없으며, 내가 문자를 보냈을 때도 아무 말 없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게다가 말끝마다 "사모님" "사모님" 했으면서, 그런 사모님이 그까짓 보증금 1000만 원이 없어서 못 주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항의했다. 그러자 그녀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 말을 했다.

"아가씨, 있는 집은 있는 집대로 사정이 있어요."

 결국 보증금 1000만 원을 받지 못한 채 짐을 쌌다. 그리고 보증금을 되찾기 까지는 4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결국 보증금 1000만 원을 받지 못한 채 짐을 쌌다. 그리고 보증금을 되찾기 까지는 4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플리커

못 받은 1000만 원... 집 나갈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라니

처음에는 한 달 안에 집이 나갈 수 있다고 위안 삼았다.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만 집이 나가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마침 대학생들이 집을 구할 시즌이었다. 그러나 새 학기가 시작하도록 새로운 세입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 아저씨는 내게 새로 구한 집을 포기하고 기다리든지, 아니면 먼저 이사를 갔다가 나중에 방이 나갔을 때 돈을 받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먼저 이사를 가려면 보증금이 필요한데,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주변 사람들은 내가 젊은 여자라고 만만하게 보는 거라며 무조건 세게 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호구처럼 보이면 안 된다"고 했다. 화를 내고 자꾸 압박해야 하나라도 일처리가 되는 게 현실이라고 조언했다. 그 1000만 원은 내게 전 재산이었다. 나는 불안 때문에, 분노 때문에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부동산 아저씨와는 승강이를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계속 관리인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진짜 집주인 연락처를 달라고 닦달할 때마다 점점 길게 자기 사정을 늘어놓았다. 갈수록 길어지는 하소연을 듣다 보면 숨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남의 사정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제 할 말만 하는 것이 밉살스러웠다.

밤에 퇴근한 뒤에는 인터넷으로 임대차 계약에 관련된 정보를 닥치는 대로 검색했다. 세상에는 보증금 못 받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차고 넘치는 듯했다. 오죽하면 보증금을 받지 못하고 이사 가는 이들을 위한 '임차권등기명령제도'까지 만들어졌을까. 그러나 이 제도를 입에 올리자마자 부동산 아저씨는 얼굴을 붉히면서 펄펄 뛰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집 빠질 텐데 아가씨 정말 왜 이래요? 내가 이런 일 한두 번 해요? 안 떼먹어, 문제없다니까. 하루 이틀 장사하고 말 것도 아니고 우리가 미쳤다고 일처리를 그렇게 하겠어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날이 계속됐다. 계약이 만료되던 날, 결국 나는 보증금을 받지 못한 채로 이사했다. 새로운 집에 들어갈 때 필요한 보증금은 친구들에게 조금씩 빌려서 만들었다.

빈 방에 삼단 플라스틱 서랍장과 바퀴 달린 철제 행어를 남겨두었다. 옷걸이에는 낡은 겨울 패딩 하나를 걸어뒀다. 보증금을 받지 못하고 방을 빼는 경우에는 짐을 몇 개라도 남겨둬야 한다는 글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이사 가는 날, 텅 빈 방에 남긴 이 물건들이 전부 잡히도록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동영상 촬영까지 했다. 관리인 아주머니에게는 보증금을 아직 받지 못했다는 내용, 월세와 공과금을 추가로 물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시한 문서에 대리인 서명을 해달라고 해 팩스로 받았다.

이사 하는 날 통화에서, 아주머니는 이제 전화기에 내 이름이 뜨는 것만 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이 아줌마 진짜 웃기는 분이네. 지금 그게 할 말이에요?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요? 저는 뭐 좋아서 이래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던 나는 이삿짐을 반쯤 실은 트럭 옆에 서서 나도 모르게 꽥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그때 중개인 아저씨가 나를 보고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게 아닌가.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방이 더러우니 나보고 청소해라? 그만 울고 말았다

이사를 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받지 못한 보증금, 남겨둔 짐과 함께 내 몸의 일부가 옛집에 남아 있는 듯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도 못 받은 돈이 떠오르면 잠이 확 달아났다.

돈을 언제 받을지 모른다는 막막함과 집주인에 대한 분노 말고도 나 자신을 향한 분노가 나를 괴롭혔다. 보증금을 못 받고 이사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내게 "바보 같다", "너무 착한 거 아니냐"며 혀를 찼다. 나는 꼭 내가 무능력해서 이런 일을 겪은 것만 같은 자괴감에 시달렸다.

나는 이사한 뒤로도 자주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왜 이렇게 집이 나가지 않느냐고 했더니, 중개인 아저씨는 "가스레인지 부근이 좀 지저분하다"고 대답했다.

"많이 그렇다는 건 아닌데... 들러서 청소 한 번 하면 어때요? 집 빨리 빠지길 바라잖아요? 뭐라도 해봐야죠. 딱 보기에 새 것처럼 보이면 아무래도 좋겠죠."
"계약 기간도 끝났는데, 그런 건 집주인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직 책임은 그쪽한테 있죠. 짐도 다 안 빼고 남겨놨잖아요."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왜 계약서에 명시된 권리는 지켜지지 않는 게 당연한데, 의무는 다해야 하는 걸까? 퇴근을 하고 옛집에 들렀다. 챙겨간 청소도구를 꺼내 세제를 풀고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주변을 솔로 박박 문질러 닦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2013년 6월, 이사한 지 4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퇴근길에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드디어 집이 나갔다는 것이었다. 너무 손꼽아 기다려왔던 터라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전화를 걸어온 중개인은 내가 알던 아저씨가 아니라 낯선 여성이었다. 그녀는 새로운 세입자가 계약을 했고 월말에 입주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보증금을 못 받았다 그러셨나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녀는 자신이 내가 알던 중개인의 후임이라고, 이전 아저씨는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얼핏 듣긴 했는데, 사장님이 지금 퇴근하셔서 자세히 여쭤보지를 못해서 그래요. 그럼 다음 세입자 들어오는 날 부동산에 나오시면 되겠네요. 그 자리에서 한꺼번에 잔금 치를 테니까요."

드디어 잔금을 치르는 날이 되었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부동산에 도착했다. 중개인이 나를 맞으면서, 집주인도 금방 도착할 거라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오늘 집주인도 오나요?"
"그럼요. 당연히 와야죠. 왜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요. 관리인이라는 아줌마하고만 통화했었거든요."
"아, 그분, 저도 몇 번 통화한 적 있어요. 그분은 이제 관련 없어졌어요. 지금은 집주인 분이 직접 다 하세요."

중간 관리인 아주머니가 일에서 손을 뗐다는 소식을 듣고 중개인에게 그간의 사정을 토로했다. 새 중개인은 "원래 집주인은 남자였는데 그 건물을 딸에게 주었다"며, 최근 본격적으로 관리를 맡겼다고 알려줬다. 그러니까 이전 관리인 아주머니가 얘기하던 '대학 동창'은 사실 집주인 아저씨였고, '사모님'은 그 집주인의 딸이었던 것이다.

"그 관리인 아주머니, 제 생각엔 과잉충성이 아니었나 싶어요. 집주인 분은 아무것도 모르시던 걸요? 아마 아주머니가 중간에서 말을 옮기기 어려워서 그랬던 것 같아요."

 4개월이나 마음 고생했는데, 보증금을 돌려받는 과정은 순식간에 끝났다. 앞으로도 세입자로 살게 될 내 인생, 앞으로도 이런 마음 고생을 계속 해야하는 것일까. 사진은 지난 2013년 3월 14일 오전 청주시 상당구 청주대학교 원룸촌 인근의 모습.
4개월이나 마음 고생했는데, 보증금을 돌려받는 과정은 순식간에 끝났다. 앞으로도 세입자로 살게 될 내 인생, 앞으로도 이런 마음 고생을 계속 해야하는 것일까. 사진은 지난 2013년 3월 14일 오전 청주시 상당구 청주대학교 원룸촌 인근의 모습.연합뉴스

갑자기 등장한 예쁘고 착한 집주인... 왜 세입자만 불행한가

새로운 세입자와 집주인이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중년의 '악덕 집주인'을 상상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집주인 '사모님'은 매우 젊었고, 굉장한 미인이었다. 세입자와 서류를 주고받을 때 흘끗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봤다. 나와 동년배인 이십대 후반이었다.

집주인 사모님은 아주 털털했다. 예쁜 것도 모자라 심지어 몹시 상냥하고 친절했다. 그녀는 이사가 당겨져서 벽이 잘 말랐는지 모르겠다고 염려했다. 도배를 새로 해준 모양이었다. 중개인은 요즘 이런 건물주는 드물다고, 새로운 세입자에게 운이 좋은 거라고 연신 말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부동산 테이블에 앉아 멍하니 집주인 여자를 응시했다. 뭔가 억울했다. 이제 부유한 사람이 외모도 뛰어나고, 성격까지 좋은 세상이 되는 건가. 결국 피라미드의 아래쪽에 위치한 사람들끼리만 서로 치고 박고, 끔찍한 성격이 되는 것은 아닐까.

몇 장의 서류가 오간 뒤에, 드디어 새로운 세입자가 지갑을 꺼냈다. 그 분은 보증금을 직접 수표로 지불하겠다고 했다. 빳빳한 100만 원짜리 수표 10장이 내 손에 쥐어졌다. 나는 왼손에 수표를 쥐고 오른손으로 중개인이 내민 서류에 서명했다. 그게 다였다. 그렇게 끝났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맹렬하게 인터넷 검색을 하고, 회사에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신문 기사에서 부동산 피해라는 글귀만 봐도 가슴이 내려앉던 시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나 위로도 없었다. 일은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그들은 이미 내 존재를 잊어버린 듯 머리를 맞대고 뭔가 의논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어쩌면 별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 부동산 중개인 아저씨의 말대로, 너무나 흔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일이 내게 남긴 후유증은 너무나 컸다.

내게는 이사 공포증이 생겼다. 부동산 문제에 지나치게 예민해졌다. 새로운 집을 계약하고, 이사하고, 집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집주인과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하는 이 모든 일들이 내게는 너무나 어렵고 두렵게 여겨진다. 내게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는 빨리 결혼해 남편에게 이 모든 문제를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이 본질적인 해결책일 리가 없다.

나는 현재 8년 차 세입자다. 앞으로도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전월세 세입자로 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그것이 불행으로 느껴져야 할까? 계약 기간이 만료됨과 동시에 보증금을 돌려받는 일이 왜 당연한 게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일이어야 할까? 전월세 세입자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
덧붙이는 글 '나는 세입자다' 응모글입니다.
#세입자 공모 #보증금 #중개인 #임차권등기명령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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