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의 한 부동산. 지나가는 시민이 부동산 앞에서 전세·매매 현황을 보고 있다(자료사진).
연합뉴스
집사람과 머리를 맞댔다. 6천만원 내외를 올려줘야 하는데 2년 동안에 모은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이곳에서 계속 거주하려면 결국 가계부채를 늘려야 했다. 이제 은행으로 가야 할 시간인 것이다. 급증하는 가계대출에 일원으로 등록하기 직전, 나는 집주인의 의사를 명확히 확인하고 싶었다.
이사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더 외곽으로 옮겨서 대출을 받지 않고 살 생각도 했다. 출퇴근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내가 고생스러운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지금 다니는 유치원에서 너무 행복해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걸렸다. 그것만은 내년에도, 후년에도 계속 지켜주고 싶었다. 경기도 부천의 한 평범한 유치원에 계속 다니게 해주고 싶은 마음, 내 마지막 자존심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요새 전세가가 많이 올랐다고 하던데요. 어떻게 하실지 궁금해서요""… (긴 침묵)""어떻게 하실지 알려주셔야 계속 살지, 아니면 이사를 할지 결정하죠""… 2주만 시간 주시면 그 때 연락을 드릴게요""2주요? 왜 2주의 시간이 필요하시죠? 그냥 얘기해주시면 되잖아요""걱정은 마세요. 시세대로 할 거니까요. 시세대로요"
먼저 전화를 건 것은 현 시세를 확인했고, 오랜 고민 끝에 올려주고 살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초저금리로 인해 최근 반전세로 돌리는 집들이 많다는 얘기까지 확인했고, 반전세 시세까지 확인했다. 나름 수 많은 경우의 수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길게 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집주인의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긴 침묵 후에 나온 '시세대로 할 거다'는 말에는 '더 이상 묻지 말아달라'는 강력한 의지도 엿보였다. 왜 집주인은 답을 주지 못했나. 왜 시간을 더 달라고 하는 것인가. 통화를 하면서 보여준 그의 침묵은 '너는 세입자다'는 사실을 명확히 일깨워줬다.
그 전에도 전세가는 상승했다. 이번에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은 했다. 한국의 전세 제도는 다른 나라의 Rent 제도와 비교할 때 독특하다. 과거 높은 금리와 주택 매매가 상승이 전제될 때 원활히 기능했던 제도였다. 이제 금리는 역사상 최저치로 폭락했고, 주택 매매가도 상승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바로 옆에 위치한 A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전세 세입자들은 2년 사이에 7천만원을 올려줘야 같은 집에 계속 거주할 수 있다. 우리 아파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올려주면 될 것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올려주기로 한 결정에는 큰 고심과 향후 이자비용에 대한 지출도 고려한 것이었지만 세상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박근혜 정부 2년차 전세시장은 말 그대로 난장으로 진입한 느낌이다.
6천만원 올려 받을 집주인, 그는 과연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