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SK의 잘못...현대차 따라하지 마라

[우리 사회에 영향을 끼친 노동법 판례①] SK-인사이트코리아 사건

등록 2014.11.11 13:51수정 2014.11.1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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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노동을 하며, 건강한 일터에서 일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용자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건강한 일터를 훼손하려 하고, 노동자는 점점 더 나빠진 일터에서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기,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노동자들의 변호사들인데요. 이들 변호사가 직접 쓰는 '우리 사회에 영향을 끼친 노동법 판례'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지난 9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현대자동차 공장 내 생산 공정의 하도급관계는 위장도급, 불법파견에 해당하여 현대자동차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사용자'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어 9월 25일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같은 취지로 기아자동차가 사용자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다시금 위장도급, 불법파견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1998년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아래 파견법)' 시행 이후 지난 16여년 동안 도급을 가장한 파견근로 형태로 일해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쟁취해 온 권리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파견법 시행 이후 무분별하게 이루어져 온 기업들의 위장도급 관계에 경종을 울린 'SK-인사이트코리아 사건'이다. IMF 이후 급속하게 늘어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과 함께 한 이 사건을 한 번 들여다보자.

1997년 외환위기 사태가 탄생시킨 파견법

 하는 일은 똑같은데, 왜 대우가 다르지? 나는 누구? 내 진짜 사장은 누구?
하는 일은 똑같은데, 왜 대우가 다르지? 나는 누구? 내 진짜 사장은 누구?최은경

1997년 말 외환위기 사태가 불러온 IMF 구제금융 시대는 근로자파견제도의 합법화를 만들어냈다.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용의 유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경영계의 협박에 노동계가 굴복하기에 이른다. 1998년 2월 9일 노사정 합의로 체결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정에 합의해 버린 것(이것이 오랜 기간 노동자들을 고통 속에서 헤매게 할 줄 그땐 미처 몰랐을 거다).

근로자파견제도는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용자(파견사업주)와 그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용자(사용사업주)가 다른, 전형적인 간접고용 형태다. '고용'과 '사용'의 분리라는 간접고용 형태에서는 노동법상 사용자는 책임을 분산·회피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노동법상 파견근로자 보호가 매우 취약하다. 뿐만 아니라, 파견근로자는 고용 불안의 위협 속에서 형식적 고용 주체인 파견사업주에게 중간 착취를 당할 수 있는 위험성마저 있다.

종래의 직업안정법에서는 근로자파견사업을 근로자공급사업의 한 형태로 보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 시대는 '고용유연화'라는 미명 아래 근로자파견제도를 합법화시킴으로써 파견근로자라는 비정규직을 탄생시켰다.


파견법은 1998년 7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지만, 파견법의 문제점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0년 7월 1일부터였다. 그 이유는 파견법에서 파견근로자의 최대 사용기간을 2년으로 하고, 2년 넘게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경우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 간에 직접고용관계가 성립하는 것으로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파견법의 이러한 규정으로 법 시행 후 2년 동안 파견근로자를 사용해 온 사용사업주는 파견근로자와 직접고용관계를 맺지 않기 위해 2년이 된 파견근로자들과의 계약을 해지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파견법 시행 이전부터 사실상 파견근로자로 일해 온 근로자들은 길게는 10년 넘게 일해 온 직장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SK의 위장도급, 불법파견에 맞선 근로자들의 법적 싸움

 이 사진은 2002년 10월, 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 실린 것으로, SK-인사이트코리아 조합원이 제지를 당하고 있는 모습.
이 사진은 2002년 10월, 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 실린 것으로, SK-인사이트코리아 조합원이 제지를 당하고 있는 모습. 철폐연대
우려하던 파견법 폐해의 직격탄을 맞은 파견근로자들. 그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2000년 여름, 대기업 SK 물류센터에서 특이한 사건이 발생했다. 용역회사인 인사이트코리아 소속으로 SK 물류센터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 2000년 8월 SK와 인사이트코리아를 상대로 관할 지방노동사무소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

그 내용은 인사이트코리아가 SK 물류센터에서 수행하는 도급 업무는 불법적인 근로자파견 사업에 해당하므로, (인사이트코리아는) 사업을 폐쇄하고 SK가 인사이트코리아 소속 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정서를 접수한 관할 노동사무소가 사건을 조사한 결과, 인사이트코리아가 불법적으로 SK 물류센터에 근로자파견사업을 한 것이 인정되었다. 이에 SK에 대해서는 시정 지시를, 인사이트코리아에 대해서는 사업장 폐쇄 명령을 내렸다. 관할 노동사무소에서 밝혀낸 위장도급, 불법파견의 실상은 다음과 같다.

① 인사이트코리아는 SK의 자회사인 인플러스가 그 주식의 100%를 소유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자회사로서, 형식상으로는 독립된 법인으로 운영되어 왔지만 실질적으로는 SK 회사 내 한 부서와 같이 사실상 경영에 관한 결정권을 SK가 행사하여 왔다.
② 인사이트코리아는 거의 전적으로 SK의 업무만을 도급받아 오면서, 그 소속 근로자 140여명을 전국에 소재한 11개의 SK 물류센터에서 근무하게 하였다. 
③ SK는 물류센터에서 근로할 인원이 필요한 때에는 채용광고 등의 방법으로 대상자를 모집한 뒤 그 면접 과정에 SK 물류센터 소장과 관리과장 등이 인사이트코리아 이사와 함께 참석하여 채용자를 선발하였다.
④ SK는 인사이트코리아가 SK 물류센터에 보낸 근로자들에 대해 SK의 정식 직원과 구별하지 않고 업무 지시, 직무 교육 실시, 표창, 휴가 사용 승인 등 제반 인사 관리를 SK가 직접 시행하고, 조직도나 안전환경점검팀 구성표 등의 편성과 경조회 운영에서 아무런 차이를 두지 않았다.
⑤ 인사이트코리아 소속 근로자들의 업무 수행 능력을 SK가 직접 평가하고 임금 인상 수준도 SK의 정식 직원들에 대한 임금 인상과 연동하여 결정하였다.

노동부의 시정 지시를 받은 SK는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던 인사이트코리아 소속 근로자들을 계약직으로 신규 채용하겠다고 제의했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SK의 계약직 채용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노동조합 위원장을 비롯한 4명의 근로자들은 (파견근로자와 마찬가지인) 비정규직인 계약직으로 채용되는 것을 거부했다. 이들은 파견법에 따라 2년 이상 사용한 자신들을 SK의 정규직 근로자로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SK는 2000년 11월 1일 "계약직 채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일할 수 없다"며 위 4명의 사업장 출입을 막았다. 이에 4명의 근로자들은 '계약직 신규 채용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SK가 자신들의 근로 제공을 거부한 행위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하였다.

이후 지방노동위원회의 초심 판정,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 판정, 행정소송 1심 판결, 항소심 판결까지 승소와 패소를 반복하면서 2년 넘는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2003년 3월 14일 선고된 행정소송 항소심의 판결 결과는 1심 판결을 뒤집고,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파견법 시행일인 1998년 7월 1일부터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날의 다음 날인 2000년 7월 1일부터 인사이트코리아 소속 4명의 근로자는 SK에 직접 고용된 관계에 있으므로, SK가 계약직 신규 채용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들을 일하지 못하게 한 것은 '부당해고'라는 것.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이 선고된 지 6개월여 만인 2003년 9월 23일 매우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상고심 판결을 선고하였다. 결론은 SK의 상고 기각이었다. 대기업 SK의 위장도급, 불법파견 위법행위에 맞서 불과 4명의 근로자들이 벌인 법적 싸움이 노동자의 승리로 막을 내린 것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다윗의 승리였다.

SK-인사이트코리아 사건의 파장은 여전히 유효한데...

 현대차 울산·아산공장 비정규직 해고자와 현대차비정규직공대위 소속 노동자들이 30일 오전 현대차 '아슬란'(ASLAN) 신차발표회가 열리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PP)앞에서 '현대차가 대법원 판결까지 무시하며 불법파견을 유지하고 있다'며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했다. 이들은 신차 '아슬란'이 '불법파견'으로 만들어진다며 바퀴, 문짝, 엔진, 브레이크 등이 정규직이 아니라 '00기업'이 만든다는 것을 알리는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현대차 울산·아산공장 비정규직 해고자와 현대차비정규직공대위 소속 노동자들이 30일 오전 현대차 '아슬란'(ASLAN) 신차발표회가 열리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PP)앞에서 '현대차가 대법원 판결까지 무시하며 불법파견을 유지하고 있다'며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했다. 이들은 신차 '아슬란'이 '불법파견'으로 만들어진다며 바퀴, 문짝, 엔진, 브레이크 등이 정규직이 아니라 '00기업'이 만든다는 것을 알리는 퍼포먼스도 진행했다.권우성

여기서 주목할 만한 건, 대법원 판결이 상당히 의외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판단 내용을 한 번 보자.

① SK와 인사이트코리아 사이의 위장도급 관계에서 인사이트코리아를 독립된 사업체로서 실체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없다 ② SK는 위장도급의 형식으로 근로자를 사용하기 위해 인사이트코리아라는 법인격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 ③ 따라서 형식적으로 인사이트코리아 소속 근로자들은 실질적으로는 SK가 직접 채용한 것과 마찬가지이며 그 근로자들과 SK 사이에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④ 따라서 파견법 적용 여부는 따질 필요도 없이 SK가 근로계약관계에 있는 근로자들을 일하지 못하게 한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인사이트코리아 소속 근로자들은 처음부터 SK가 고용한 근로자이고, 인사이트코리아는 아예 실체가 없는 회사라고 본 것이다. 이같이 겉으로만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회사의 법인격을 부인하고 그 배후에서 이를 이용하는 회사에게 법적 책임을 지우는 '법인격 부인'의 법리는 일반 민사사건에서도 실제로 인정된 사례가 드물다.

때문에 위장도급, 불법파견의 문제가 다투어진 노동사건에서 대법원이 이 법리를 적용하여 SK를 직접적인 사용자라고 판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판결이다. 회사들이 사업에 필요한 근로자를 충분히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할 수 있고, 또한 법적으로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데도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도급계약의 형식으로 근로자를 사용하는 방식이 광범위하게 남용되던 시절의 판결이기 때문이다.

SK-인사이트코리아 사건 대법원 판결 후 사회 분위기가 달라졌다. 파견법 시행 이후 드러나기 시작한 위장도급, 불법파견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본격 떠오른 것. SK-인사이트코리아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정규직 쟁취 투쟁에 법적 근거를 제시한 효시적인 판결로 평가되는 이유다.

SK-인사이트코리아의 판례는 이후 2008년 현대미포조선의 사내하청 도급관계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 냈다. 또 2010년 이 글의 앞머리에서 소개한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의 기초가 된 현대자동차의 위장도급, 불법파견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최병승씨 투쟁 사건으로 알려진 판결)까지 그 성과가 이어졌다.

그러나 법의 판단이 현실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점은 아쉽다. 11년 전, SK-인사이트코리아 사건의 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갔다. 반면 법원으로부터 직접고용을 인정받은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사측이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간다면 세월없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34개월만의 복직... 그때 심정 말로는 표현 못해" 기사가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SK-인사이트코리아 사건 담당 변호사로, 민변 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SK-인사이트코리아 사건 #비정규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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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연구조사, 변론, 여론형성 및 연대활동 등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1988년에 결성된 변호사들의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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