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구 <416기록단> PD
이영광
지난 11일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실종자 수색 중단을 요청했다. 고 황지현양을 찾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수색 중단은 뜻밖이었다. 정부는 수색 중단 요청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일까. 가족들이 수색 중단을 요청하자마자 '범정부사고대책본부'(아래 범대본)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일주일 만에 철수되었다. '마지막 한 명까지 다 찾겠다'던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의 말은 결국 빈말이 되어버렸다.
그럼 진도는 모두 떠나왔을까? 아니다. 아직도 진도엔 3명의 실종자 가족들과 유가족들 그리고 시민단체와 '416기록단'란 이름으로 모인 독립 PD들이 남아 있다. 특히 416기록단은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부터 진도에 상주하며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왜 지금도 진도에 남아 있는지 궁금하여 416기록단 멤버인 이승구 PD를 지난 24일 서울 청량리역 근처 커피숍에서 만났다. 다음은 이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비용문제로 국민 수습 않겠다는 것, 국가의 모습 아니다"
- 현재 진도는 어떤 상황인지 궁금합니다."수색 종료 선언과 함께 모든 것이 마무리된 상황이고 범대본도 해체식을 했어요. 모든 시설도 철수했고 체육관도 비웠어요. 남은 가족은 3가족 정도 되는데 그들은 안산으로 올라가지 않고 팽목항에서 끝까지 인양을 요구하면서 힘을 모으겠다고 해서 유가족과 일반 시민단체 분들이 내려오셔서 함께 인양에 힘쓰자고 말씀하고 계세요."
- 그럼 어디서 지내나요?"팽목항에 컨테이너 숙소가 있어요. 컨테이너 마을이 조성되어 있거든요. 의료시설도 있었지만 범대본 철수와 함께 모든 것이 떠났어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 가족 숙소, 자원봉사자 숙소, 식당과 세탁실이에요. 그리고 자원봉사자들 중에 오랫동안 계시던 분들이 다시 와서 봉사를 하시고, '잊혀져가지 않도록 팽목항을 지키자, 그리고 세월호 인양을 국가에 계속 건의하고 시민단체도 힘을 모아서 이야기해달라'고 말씀하세요."
- 지난주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이 범대본 해체 중단을 요구했는데."그렇게 했지만 이주영 장관은 '더 이상 범대본에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국민안전처에서 국민 여론과 세월호 상태를 점검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인양문제를 결정할 것'이라고 선을 긋고 해체한 거죠. 그래서 더 이상 범대본에 인양을 요구할 수도 없게 되었어요.
가장 큰 건 실종자 가족들 스스로가 수색 중단을 요구했다는 건데, 그 결정도 사실 어려운 과정이었죠. 전문가들은 12월 초까지는 잠수가 가능하다고 하는데도 실종자 가족들이 수색 중단을 요구했고, 그러니 범대본은 가족들을 설득해야 하는 부담감을 덜게 된 거죠."
- 가족들 스스로 결정한 건가요?"지금 가족들은 후회하세요. 수색 중단 요구가 너무 빨랐다는 것과 함께, 인양을 요구해야 하는데 그것에 대한 약속도 없이 수색 중단을 했다는 걸 이제 와서 뒤늦게 깨달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가족들은 충격을 받으셨지만 그렇다고 팽목항을 떠날 수도 없죠. 물론 떠난 가족도 있어요. 그분들은 정부에서 인양할 것으로 생각하고 올라갔지만 아직 정해진 건 없어요."
- 인양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인양이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요.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물살이 거세다고 합니다. 잠수사들의 안전문제와 비용문제로 인양에 대한 찬반 여론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바다를 터전으로 삶을 살고 계신 해남 지역 어민들께서는 인양을 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계세요.
인양에 비용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비용문제를 넘어 그 이면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는 국민 한 사람까지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죠. 국가의 3요소는 국민, 주권, 영토잖아요. 그런데 지금 비용문제를 들어서 국민을 끝까지 수습하지 않겠다는 것은 국가의 모습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기업은 비용을 따져요. 근데 국가는 기업이 아니잖아요. 국민 한 사람이 국가이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만약 세월호 같은 사건이 다시 발생했을 때 또 국민을 포기하는 일이 생긴다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모든 국민들에게 한 점 의혹도 없이 진실을 밝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에서 몸 흔들며 '파도 세다' 연기하는 기자... 부모들 경악"- 어떻게 해서 취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사고 당일부터 동료 PD들은 현장에서 촬영하고 있었고 저는 17일 새벽에 친구에게 전화를 받았어요. (친구의) 조카가 세월호에 갇혀 있는데 구조되지 못했다는 거예요. 이어서 '구조 의지도 없는데 언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너는 독립 PD이니까 진실을 밝히는 보도를 해줘'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 마음을 갖고 함께 모인 PD들이 416기록단이란 이름하에 참사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끝까지 기록해야 되겠다, 우리가 어느 편이나 어떤 색깔론이 아니라 중립적인 기록자의 입장에서 이걸 기록해 나가자, 진실은 그 현장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진실을 놓치지 않게 현장을 지키자'는 논의 후에 직접 현장에 뛰어들게 되었죠."
- 진도에 처음 내려가셨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상황을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죠. 저는 진도 체육관에 6월 2일에 갔어요. 동료 PD들은 초기부터 진도 현장에서 기록하고, 저는 안산합동분향소에서 촬영하고 있었어요. 진도로 가보니 그땐 많은 희생자들이 수습된 상황이고 10명 정도 실종자가 남았을 때예요. 체육관에 계신 실종자 아버님들이 술을 드시면서 '마지막 한 명까지 찾아서 가겠다'고 하셨어요. 수색이 보름이면 끝난다고 하니 그걸 믿고 계셨어요. 근데 수색이 길어졌죠."
- 수색이 왜 길어진 거죠?"88수중개발 잠수사가 세월호 선미를 작업할 때 산소아크절단을 하다가 절단 부위가 폭발되고 잠수사는 사망했는데, 배 안의 구조물이 폭발과 함께 무너졌죠. 그러다보니 잔해물들이 많아서 그걸 꺼내는 데 시간을 다 썼어요. 안 그랬다면 수습이 쉽게 끝났겠죠. 가족들은 수색이 제대로 안 이뤄졌다고 생각하세요.
왜냐면 마지막에 나온 황지현양의 경우는, 지현이를 화장실에서 봤다는 생존자의 증언을 듣고 지현이 아버님이 여자 화장실 수색 요청을 했어요. 하지만 여러 번 수색했다는 이유로 해경에 묵살당했어요. 화장실을 14번이나 들어갔다고요. 근데 결국 거기서 (황양의 시신이) 나왔잖아요. 때문에 실종자 가족들은 수색이 제대로 안 이뤄졌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죠."
-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특히 참사 초기에 실종자 가족들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컸잖아요. 독립 PD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언론에 대한 불신이 커요. 초기에 언론이 해경은 수색을 안 하는데 하고 있다는 보도를 냈고, 한 방송사 기자가 흔들리지도 않는 배에 서서 몸을 흔들며 파도가 심하다는 듯이 방송하는 현장을 부모님들이 보고 경악했다고 해요. 언론이 왜곡하는 걸 직접 희생자 가족들이 본 거죠. 그러다 보니 불신이 컸고 그 이후에 일부 방송사들이 팽목항을 떠나야 했던 상황이 있었어요. 몇몇 방송사들만 남았죠.
저의 경우, 부모님들을 만나서 촬영하는 데까지 상당한 시간을 기다렸어요. 바로 카메라를 들고 촬영한 게 아니라 2주 정도는 가족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냈어요. 그때까지 항상 카메라는 들고 있었지만 촬영은 안 했고 그분들이 저희를 믿고 촬영을 허락해주실 때까지 기다렸죠."
"계절이 두 번 바뀐 시간... 가족들은 아직도 4월 16일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