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도 아닌 이것이야 말로 20대 특권이다

[공모-그래, 나도 장그래였다]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사는 삶

등록 2014.12.11 16:27수정 2014.12.1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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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주인공 장그래는 꿈을 잃고 현실에 흔들리는 오늘날의 청춘을 대변한다. ⓒ CJ E&M


여기 한 명의 근로장학생이 있습니다. 말이 장학생이지, 사실은 학교의 파트 타임 알바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바쁘지도 않은 사립학교의 총무과에 왜 이 근로장학생이 필요한 거지? 하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지내던 어느 날, 나름대로 똑똑하다고 소문이 난, 총무과의 실세에 가까운 한 과장님께서 부르셨습니다.


"학생, 잠시 우체국에 갔다 오지?"
"네, 무슨 일이세요?"

"통장 정리 좀 해와"라며 건네신 통장. 그 통장은 한눈에 봐도 개인통장이었습니다.

"과장님, 이거 개인통장인데요?"
"근데?"

순간 망설였습니다. '뭐지?' 하는 생각이 스쳐 갔지만, 생각지도 않게 대답해 버렸습니다.

"저 이런 일 하러 여기 온 것 아닌데요?"


조용히 자기 일만 하던 총무과의 직원들이 일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저를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졌습니다. 과장님께서 약간 멈칫하셨지만 도리어 더 화를 내면서 그럼 무슨 일을 하러 온 건데? 라는 비아냥거리는 듯한 물음이 돌아왔습니다. 22살이었던 저는 똑똑히 얘기했습니다.

"저는 총무과의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근로장학생이지, 과장님의 개인적인 일을 도와드리러 온 것이 아닙니다."

과장님, 가만히 계시던 팀장님까지 거들어 뭐라 말씀하셨지만 저는 끝내 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저는 꽤 큰 회사의 인턴으로 취직했습니다. 기간은 5월 23일부터 9월 30일까지. 4개월 남짓한 시간이었고 함께 뽑힌 인턴은 6명이었습니다. 이 기간 잘하면 정직원이 될 수도 있다는 아주 달콤한 말과 함께 신입사원의 반도 안 되는 급여 조건이었습니다.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6개월이 지나도록 취직을 하지 못한, 이른바 스펙이 부족한 '애들'을 데려다가 아주 저렴하게 사용하는 셈이지요.

일은 단순했지만, 정규직 직원과 동행하면 반드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전국 방방곡곡의 '출장' 업무가 많았습니다. 출장비 없는 출장 자체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지만, 거래처 직원들에게 저의 4개월짜리 명함을 줄 때, 지나가면서 던지는 "회계사면 돈 엄청 많이 벌겠어요?"라는 인사를 들을 때는 조금 곤혹스러웠습니다.

제가 간 출장지는 강원도와 전라도.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고장이지요. 물론 업무의 성격에 감사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사람들은 또 얼마나 친절한지…. 그들의 소싯적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나쁘지 않았고, 사람 좋은 그들에게 얼마 안 되는 지식이지만 이것저것 가르쳐 주면서 자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출장에서 돌아와 데이터들을 정리하고 인턴들끼리 모여 나름대로 일 잘하는 방법을 공유하는 수다도 유익했습니다.

그러던 중 과장님, 부장님, 이사님을 동반한 회식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때 하신 부장님 말씀, 야 너는 왜 이렇게 불만이 많냐? 아마 인턴 주제에 이것저것 따지고 드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잘해~ 계속 다녀야지~"라는 은근한 힐책도 아니고 회유도 아닌 말들.

정규직 사원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아마도, 어떤 행동을 제약하기보다는 태도를 제약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너의 행보는 나에게 달려있다는 암묵적인 인사권이 주는 힘에 의해 나도 모르게 위축될 수밖에 없는, 작아질 수밖에 없는 그런 태도를 '윗분'들은 원하는 것이고, 그 태도들은 어떤 면에서 일을 아주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태도는 결국 오늘을 유보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저의 일관된 모드는 '고개를 들고 다니는 인턴'이었습니다. 정규직이 될 수도 있는 내일을 위해, 오늘 무엇인가 유보한다면 22살의 나에게 참 미안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태도를 '윗분'들이 모를 리 없고, 꼭 이 이유만은 아닐 것입니다만 저는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별로 후회나 아쉬움 이런 것은 없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고 정규직 되겠다고 무리한 것도 없었으니까요.

제가 취업준비생을 포함하여 인턴으로 일하던 시절에 했던 일 중 후회하는 일이 딱 한 가지 있다면, '내가 좀 더 시험을 잘 봤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1년 차 회계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차라리 더 높은 성적으로 늦게 붙을 걸 그랬나?' 하는 자책입니다.

우리는 이제 청년실업이나 변호사, 회계사 같은 전문직의 실업률이 높아져 가는 것이 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인턴이 유행처럼 번지는 이 시대에 던져야 할 질문이지, 나 개인의 문제로 한정해서는 안 됩니다. 인턴의 테두리 안에 있다고 해서 내가 인턴으로의 자격밖에 안 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무거운 논제에서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조금 더 충실하게 '오늘'을 살 수 있기 때문이고,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인턴을 하면서 공부도 하고 요가도 다니던 저의 바쁜 20대는 진짜 '오늘'을 살지 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신기하게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커피 심부름을 포함한 윗사람들의 '귀찮은 일'은 절대 해 주지 않으면서, 잘못된 것은 따지기도 하고 대들기도 하면서, 22살의 나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열심히 살되, 승진이나 억대 연봉을 위해 절대 무리하지 않고 '오늘'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돌이켜 생각해 봅니다. 그때 총무과 과장님은 왜 그랬을까?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아마도 과장님은 '단지 귀찮았을' 것입니다. 지금의 저라면 아마도 해 드렸을 겁니다. 개인적인 일을 조금 해 준다고 해도 별로 거리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나이가 들었고 무뎌졌습니다. 하지만 다시 22살이 된다면 저는 또다시 거절할 것입니다. 내일을 위해 참지 않고 거절할 수 있는, 용기도 아닌 약간의 어리석음은 동반한 무식함이야말로 20대의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도 자리에 앉아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너, 너의 귀찮은 일들을 누군가에게 미루고 있지는 않니?'
'너, 정말 오늘 살고 있는 거 맞니?'
덧붙이는 글 기사공모 '그래, 나도 장그래였다' 응모글입니다
#인턴 #장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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