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도 끝났는데 죽어나는 고3... 이건 아니다

[주장] 일탈 방지한다며 '학생 교실 잡아두기' 계속... 허울뿐인 교육 정상화

등록 2014.12.17 08:25수정 2014.12.17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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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청소년 특별면 '너 아니'에 실렸습니다. '너 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선생님, 오늘은 언제 마쳐요?"
"그만 좀 물어라, 이놈들아. 당연히 어제랑 똑같지. 너희들만 힘드냐? 나도 죽겠다."
"아, 진짜 돌겠네. 야들아, 그냥 자다가 이따가 피시방이나 가자."

한 달째 의미 없는 쳇바퀴... 우리는 왜 교실에 있나

 하는 일 없이 감독만 하다 지치신 선생님도 떠난, 텅 빈 교실
하는 일 없이 감독만 하다 지치신 선생님도 떠난, 텅 빈 교실조우인
벌써 거진 한 달째, 똑같은 레퍼토리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바로 수능이 끝난 다음 날부터의 우리 학교 이야기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대화는 오가지 않았습니다. 수험을 끝낸 대개의 학생들은 자연스레 오전에 잠깐만 학교에 들렸다 하교했고, 잠시 동안의 정시상담을 제외하면 선생님들과 유의미한 대화를 나눌 기회나 필요도 크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때까지의 수능 이후의 고3 풍경이었습니다. 문제는, 올해부터는 그것이 불가능해지면서 시작됐습니다.

"공교육 정상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반 아이들의 격한 반응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아마 9월 모의고사 이전 즈음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로부터 '사실'임을 공식적으로 확인받았습니다.

수능 이후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일탈을 막기 위해 올해부터 '엄격히 적용'된 답니다. 이전까지의 고3 수업은 사실 문제가 많았습니다. 탈선으로의 위험부터 막아야 한다는 말부터 대부분의 학교가 실행한 단축수업 등이 수업일수 규칙 등에 위반된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이 제도의 요지는 결국, '길 잃은 고3 잡아두기'입니다. 학교에서 정상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저 게임만을 무료하게 즐길 뿐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저 게임만을 무료하게 즐길 뿐이다.조우인

사실 제도 그 본연의 목적만 듣노라면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입시를 막 끝낸 고3 학생들의 경우 쉽게 다양한 유혹들에 중독될 수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직·간접적 편법으로 통해 획득한 유휴 시간을 그저 보내기만 합니다. 하지만 여러 학생들이 이러한 수업 운영에 분노하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학교가 문자 그대로, '학생들을 잡아놓기'만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몇 시까지 학교에 남아 있어라"는 말 한 마디가 다입니다. 학생들을 방치해 놓은 데다가, 출석체크만 매 시간 꼬박꼬박 해대고 교실을 감독합니다. 학생들은 꽉 막힌 교실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친구들이 잠, 휴대폰 게임, 드라마 시청, 그리고 다시 잠의 무의미한 생활만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강요한 시간이 끝나면 쏜살같이 교외로 나가 예전 수험생들이 보냈던 것처럼 시간을 보낼 뿐입니다. 결국 제대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 채 그저 학교와 교육부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만 깊어진 꼴입니다.

말뿐인 '체험활동'은 학교 근처 박물관에서 집합한 뒤 한 두 시간 후 자진 해산하는, '일찍 마치기용' 꼼수로 전락했습니다. 비단 우리 학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육부 지침에 의해 강제되는 단축수업 금지로, 지역을 불문한 여러 학교의 고3이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름뿐인 공교육 정상화... 프로그램 마련 시급하다

 잠자는 학생, 시계만 보고있는 학생, 게임하는 학생, 그리고 자리에 없이 도망쳐버린 학생들까지, 공교육 정상화의 본 의도와는 괴리가 있다.
잠자는 학생, 시계만 보고있는 학생, 게임하는 학생, 그리고 자리에 없이 도망쳐버린 학생들까지, 공교육 정상화의 본 의도와는 괴리가 있다.조우인

일반 학생들이야 여기서 끝나지만, 예·체능계열 학생들은 또 다릅니다. 예·체능 학생들은 수능 이후가 본격적인 입시의 시작입니다. 만약 수시 전형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면 예체능 학생들 중 다수는 정시 입학의 실기고사 대비에 매달려야 합니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학원에서 오랜 시간 준비를 합니다. 지방에 있는 학생의 경우 대도시로 한 두 달 이상 거주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필연적으로 학교생활이 소홀해지거나 결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부터는 예외도 배려도 없습니다. 그저 무단결석 혹은 조퇴로 출석부에 기록됩니다. 경우에 따라 입시에서의 크고 작은 불이익을 감수해야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학교나 교육부가 진정으로 '공교육 정상화'라는 이름하에 무엇인가를 바꾸고 싶다면, 제대로 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고등학교가 마지막으로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예체능 준비생들에게는 그들이 사교육의 필요성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실기 대비 지원이 필요합니다. 체험학습을 통해 실제로 학생들이 무엇인가를 보고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 기간을 활용하여 실제 사회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가르쳐줄 수도 있습니다. 아르바이트 현장 체험이나 근로계약 절차 및 방법, 기본적인 응급처치법, 진로 탐색 등 '입시'라는 하나의 틀에만 갇혀 있던 상황에서는 알려줄 수 없던 것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학생들은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교실 책상에 얽매여 있습니다. 지금의 공교육 정상화는 학생들의 불만만 양산한 채 현장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오늘 하루는 도대체 언제 마치나요?"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하고는 저와 제 친구들이 희생의 1기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마지막이기를 바랍니다.
#고교 정상화 #수능 이후 #고등학생 #교육 정책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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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시민기자. 서울대 로스쿨 졸업. 다양한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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