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형 프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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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은 우리 삶에서 자신을 증명하는 표현의 한 부분이다. 특히 대한민국 남자는 자존심을 목숨같이 여기는 풍조가 있다. 남자가 가지는 자존심의 가치는 그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주요 지표로서 나타난다.
"남자라면 이 정도는 해야(가져야) 자존심이 살지"라는 의미는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남자들이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하는 고민거리다. 남자의 세계에서 자존심은 속칭 '가오', '간지'라고도 통칭되기도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 한마디, 몸짓하나하나까지 남자들은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족속들이다. 남자는 곧 자존심이라지만, 정작 남자가 자존심을 세운다고해서 남는 것은 몸과 마음의 상처가 남는 일이 허다하다.
남자의 자존심을 세우는 첫 단계는 머리스타일이다. '남자는 머리빨'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여자는 화장이 잘된 날에 하루가 기분 좋게 시작한다면, 남자는 머리 스타일이 잘 꾸며진 날에 하루를 즐겁게 시작할 정도다.
필자의 10대 학창시절만 해도 '두발 규제'란 것이 있었는데 현재 10대들의 자유롭기 그지없는 두발 자유를 늘 꿈꿨다. 시간이 흘러 스무 살이 돼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신나게 머리도 길러보고 멋도 부리며 살았지만 자유도 잠시, 대부분의 남자들이 거쳐 가야할 약 2년간의 강제 두발 규제 캠프에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그 제한된 머리 길이에서도 멋을 추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었다.
속칭 바리깡이라 불리는 이발기로 모히칸(일명 베컴 머리)스타일을 만드는 것이 당시 군대 머리스타일의 유행이었다. 특히 휴가를 앞둔 선임 머리를 다듬는 후임의 두발 정리 시간은 머리를 깎는 자와 머리를 깎이는 자 모두, 침 삼키는 움직임마저 조심스러운 순간이었다.
그 몇 분 동안의 결과물이 이후 내무 생활의 평화와 일신의 안위가 걸린 절체절명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름의 멋을 갖춘 군인은 휴가를 나와 평소 관심 있던 여자친구, 학교 여자후배, 동네 여자친구, 연락한 지 오래된 지난 여자 친구까지 여자라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대쉬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친구 혹은 아는 오빠 이하의 감정만 되돌아오는 게 허다하다. 부대에서는 최고 유행 머리스타일의 선두주자였지만, 사회에서는 그냥 군인 아저씨인 게 슬픈 현실이다.
남자의 핵존심은 머리도 적용되지만 대부분의 핵존심은 모든 갈등의 근원인 말, 말을 하는 입에서 튀어나온다. 주로 허세, 허풍으로 재생산되는 입존심은 잘해봤자 본전, 못하면 망신살로 뻗치는 지름길의 입구(入口)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입존심의 무대는 술자리다. '남자니까 술도 잘 먹어야 남자지'라는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평소 술자리를 즐기던 대학생 K씨(26)는 모처럼 만의 소개팅 자리를 갖게 됐다. 오랜만에 나간 소개팅이라 긴장도 됐지만 상대방 여성도 호감을 표시, 이내 소개팅 자리는 무르익어갔다.
자연스럽게 한두 잔이 오가는 자리가 됐고, 모처럼 좋은(?)시간을 가지게 된 K씨는 술잔이 오가는 마주침에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술자리를 좋아했으나 주량은 평범했던 K씨는 상대 여성이 자신을 봐주는 줄도 모르고 계속 술잔을 들이켰다.
결국, 그는 첫 대면의 자리에서 소개팅 여성보다 먼저 장렬히 전사하고 만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소개 받기 전 상황으로 재부팅 됐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처럼 남자는 술자리 허세. '술존심'이 상당하다. 이성과의 자리뿐 아니라 동성친구간의 술자리에서 술존심은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분위기에 휩쓸려, 혹은 몇 마디 도발성 언사에 남자란 족속들은 너무도 쉽게 술의 마성에 빠져든다.
술의 노예가 된 남자는 그간 억눌러왔던 상대방에 감정들을 술로써 표출한다. 이렇게 표출된 술존심은 친구도 잃고, 잘 쌓아오던 신용도 잃고, 더 나아가 직장도 잃게 되는 슬픈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남자들은 많고 많은 핵존심 중에 술존심은 각별히 조심해야겠다.
끝으로 남자의 핵존심은 남자의 마음 자체라 할 수 있다. '남자니깐 모든 일을 잘할 수 있다'라는 마인드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능력에 있어서도 가진듯한 착각을 표면화시킨다.
대학에서 학생회장으로서 학생회 인원들, 특히 여학생들과 마주침이 많은 O씨(26)는 남자다움이 물씬 풍기는 누가 봐도 상남자였다. 마침 여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벽에 못을 박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자 O씨는 당당하게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나서게 된다.
여학생들의 기대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은 K씨는 군 시절 작업했던 요령을 떠올리며 못을 향해 장도리를 휘둘렀다. 하지만 장도리의 단면은 못이 아닌 그의 손톱에 꽂히게 됐고, 그렇게 듬직했던 O씨는 손가락마저 듬직해진 자타공인 '진짜 듬직남'으로 등극하게 됐다. 이처럼 남자의 핵존심은 끝이 없다.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운전 실력을 뽐내며 무리한 운행을 펼치다 차의 절반이 파손되는 사고를 초래한 대학원생 B씨(28)는 그동안 모은 아르바이트 비 200여만 원을 고스란히 수리비에 쏟아 부었다. B씨는 당시의 일을 후회하며 그날 이후로 절대 운전대를 잡지 않고 있다.
이외에도 길을 걷다 여성들이 모여 있는 곳을 걸어가면 어깨와 목을 빳빳이 세우고 걷는(정작 여자들은 관심도 없다)일이나 지나가다 어깨 부딪혔다고 으르렁 대는 남자들, 지나가다 마주치는 눈싸움이 주먹싸움으로 커지는 일까지, 남자의 핵존심은 참으로 떨어지는 낙엽의 무게만도 못한 것이 확실하다. 하나 쓸모없는 남자의 핵존심, 지나가는 개는 받아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