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km를 따라 온 '떠돌이 개'
최현호
사람은 개에 대한 고정관념을 몇 가지 갖고 있습니다. '개는 먹는 걸 줘야 따른다', '주인을 반기는 건 밥 주는 사람이기 때문' 같은 생각은 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개를 보며 그 고정관념은 틀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물이라고 단순히 식욕만을 따르는 게 아니라 그들도 오묘한 교감능력 같은 게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제가 당시 여행을 떠난 이유는 '삶의 괴로움'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당시 헤어진 여자 친구와의 이별이 여행의 가장 큰 이유를 차지했습니다. 남들 다 해보는 이별 가지고 뭔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 커플 사이엔 나름대로 말 못할 심각한 사건이 많았거든요. 게다가 그 즈음엔 친한 친구가 갑자기 돌연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건강하던 녀석이 대기업에 입사한 지 몇 개월 만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외에 가정적으로도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쳤습니다. 아무것도 손에 잡을 수 없던 저는 이런 괴로움들을 안고 그저 '무작정 걷는 게 목표'인 여행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지레짐작에 불과하지만, 무거운 배낭을 메고 어두운 모습으로 걷는 저의 상처를 그 개가 감지했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를 따를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거든요. 어쨌든 그날 함께 걷고, 함께 쉰 떠돌이 개의 존재는 제게 심리적으로 큰 힘이 됐습니다.
장장 5시간 정도 나만 보며 따라 왔다동물은 이렇게 인간에게 힘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유겠죠. 그런데 저는 이 여행을 하면서 떠돌이 개가 제게 준 '무차별적인 사랑'과는 반대로 인간이 동물을 해한 수많은 '로드킬'의 흔적을 마주했습니다. 기사에서나 보던 '로드킬'이라는 걸 직접 보니 끔찍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자신의 속을 전부 드러내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한 고라니, 차에 치여 도로변에서 동사한 고양이, 도로 한 가운데에 내장을 길게 늘어뜨린 이름 모를 동물까지. 인간은 동물이 주는 기쁨만큼 동물을 사랑해 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떠돌이 개 사건'과 '로드킬'을 함께 접하면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