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선 서울 관악을 출마를 선언한 정동영 <국민모임> 인재영입위원장.
권우성
정동영 국민모임 인재영입위원장의 출마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까? 탈당을 선언하기 전인 지난해 12월 20일 인터뷰(관련기사 :
"정권에 맞설 용기 없는 새정치, 정치 인생 건 결정하려고 한다")를 진행할 때도, 그가 신당 창당에 나서게 된다면 결국 출마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논의를 거쳐 어떤 명분으로 출마하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동영'이라는 정치인이 걸어온 길을 볼 때 그의 출마는 마치 예정된 일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출마를 부인해왔다. 그는 "야당교체로 정권교체를 이루는데 밀알이 되겠다"라며 사실상 '백의종군'을 선언했고, 수차례 그 말을 확인했다. 그것을 뒤집은 건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의 출마를 놓고 '철새정치', '야권의 분열'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1일 신촌의 한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그가 출마를 결심하게 된 과정, 출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그의 명분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정 후보는 이날 인터뷰에서 "새벽 네 시쯤에 출마를 결정했다"라며 "매번 내 선택이 좋은 선택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좋은 결정이 아닐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주에서 동작으로 다시 전주로, 또 강남으로 출마 지역을 옮긴 이력이 있다. 그는 '철새정치'라는 비판에 "그렇게 부르는 건 노선을 바꿨을 때다. 나는 정확한 노선으로 날아가는 새"라며 동작과 강남 출마는 당이 결정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 후보는 또 그의 출마로 인해 야권이 분열돼 관악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될 것이라는 우려에도 명확히 선을 그었다. 그는 "새누리당이 당선될 일은 없다"라며 "관악은 역대 7번의 선거에서 보수여당 후보를 언제나 득표율 35% 안에 가뒀고, 대표성 있는 야권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야권의 1등이 당선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어부지리는 없고, 야권이 경쟁하는 것이고, 그래서 (야권이) 강화되리라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정 후보는 최근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안보행보와 관련해 "안보행보가 아닌 평화행보를 해야 한다"라며, 특히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에 날을 세웠다. 그는 "문 대표의 명확한 입장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며 "사드는 미국의 이익이지 국익이 아니다, 우리의 국익은 전쟁 가능성을 줄이고 평화체제를 완벽하게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명확히 반대를 말하지 않는 야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배반했다"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정 후보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15년 만에 가장 진땀나는 결정이었다"
- 지난 탈당 선언부터 이번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해왔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발언을 뒤집게 됐다. 출마 선언에서 "많은 번뇌가 있었다"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그 번뇌에서 좀 벗어났나?"조금 전에 어떤 한 큰스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출마를 반대했던 분이다. 월요일 출마선언 후에 전화를 드렸는데 안 받으셨다. 마음이 많이 불편하셨을 거다. 밤에 잠도 못 자고 뒤척이며 걱정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정치인의 결정이니까, 기왕 결정을 내렸으면 결과가 좋아야 한다고,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해주셨다.
마지막까지 출마에 반대하신 분들의 말씀도 맞다. 반대로 여기서 몸을 던져야 한다고 하신 분들의 말씀도 맞다. 지난 일요일 국민모임 발기인대회에서 하루만 더 시간을 주면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도 결정을 못했다. 어떤 결정을 할지 몰랐다. 그날 저녁 국민모임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찬반이 엇갈렸다. 결국 결정은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네 시쯤에 결정했다. 가족들이 같이 있었다. 계속 만류했던 아내는 말이 없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피가 제 피보다 더 뜨겁습니다'라고 했다. 20년 정치를 하면서 승부의 고비를 피해가지 않았다. 그게 때로는 패착이고 나에게 크나큰 패배를 안겨줬지만 매번 나를 던졌다. 이번이 가장 고통스러운 결정이었다. 지난 2000년 정풍운동(천정배·신기남·정동영이 중심이 돼 펼쳤던 당 개혁운동) 때 밤을 새워 기도한 기억과 겹쳤다. 그때도 정치를 접을 마음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15년 만에 가장 진땀나는 결심이었다."
- 그동안 열린우리당 창당, 대통합민주신당 창당, 대선출마, 동작 출마, 전주 복귀, 민주통합당 당대표 출마, 강남 출마까지 무수한 정치적 선택을 하고, 실패도 맛봤다. 이번 탈당과 재보궐 출마도 실패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래서 겁이 났다. 매번 내 선택이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실수를 많이 했고, 실패도 많이 했다. 그래서 아프기도 했고, 상처가 있다. 두려움이 있었다. 또 실패하면 어떡하나. 좋은 결정이 아닐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다.
아내 때문에 성당에 다니게 됐는데, 부활절을 앞둔 고난주일에 영성체 기도문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 잔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서 제가 마셔야 한다면 아버지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 말이 가슴을 때렸다. (출마는) 피할 수 있는 잔인가, 피할 수 없는 잔인가.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콤플렉스가 있다. 그가 과감하게 결단하는 모습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행동과 언어에서 보통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는 끝없이 중심이 흔들렸다. 한 시간 동안은 '해야겠다'라고 마음먹었다가, 한 시간 동안은 '아니다, 감당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새벽 네 시에 끝났다. 결론은 정면승부였다."
- 일각에서는 지역구를 수차례 바꾼 행보를 '철새'라고 비난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내가 양심불량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철새라는 인식은 전혀 없다. 정치인을 철새라고 부르는 건 노선을 바꿨을 때다. 나는 정확한 노선으로 날아가는 새다. 갈지자 행보, 하지 않는다. 내가 가는 노선이 틀렸다는 비판은 받아들일 수 있다. 그건 논쟁하면 된다.
지역구를 많이 옮겼다는 얘긴데, 동작 출마는 일방적으로 밀려서 나갔다. 정말 출마하고 싶지 않았다. 대선 끝나고 3개월 만에 출마 압박을 받았다. 심신이 다 지쳐있었다. 강남에 간 것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내가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