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과 신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의 다산 유적지(정약용 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신숙주도 외형상으론 만취 상태였지만 속으론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점은 그가 술자리가 파한 뒤 집에 가서 책을 읽은 사실에서 확인된다. 이유의 팔목을 움켜쥔 행위가 취중 실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유도 그걸 간파했는지, 술자리가 끝난 뒤 내시에게 신숙주 집을 염탐하라고 지시했다. 신숙주가 곧바로 잠들었는지 아니면 책을 보고 있는지 확인하라고 시킨 것이다. 신숙주가 책을 보고 있다면 신숙주가 자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도 모르고 신숙주는 집에 가서 서재를 환하게 밝혔던 것이다.
<소문쇄록>에 따르면, 한명회는 술자리에서 이유의 속마음을 간파했다. 그래서 자기 집 하인을 친구인 신숙주에게 보내 얼른 촛불을 끄라고 귀띔했고, 신숙주가 소등한 직후에 내시가 다녀갔다고 한다.
신숙주의 사례가 그 개인의 사례로 그치지 않고 이 정권의 술 문화를 대변했다는 점은, 학자의 풍모를 풍기는 정인지도 유사한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음력으로 세조 4년 2월 13일자(양력 1458년 2월 26일자) <세조실록>에 따르면, 영의정 정인지는 술자리에서 세조 이유에게 실수를 하는 바람에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문제는 1458년 2월 25일에 발생했다. 이날 임금과 대신들이 술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유는 불경 간행에 관한 생각을 밝혔다. 그러자 술을 상당히 많이 마신 상태였던 영의정 정인지는 불경 간행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정중한 태도로 반대한 게 아니었다. 임금이 분노할 정도였다고 한다.
밤새 분을 삭이지 못한 이유는 다음 날인 2월 26일 정인지에게 따져 물었다. 그동안 내가 사찰을 세우고 불경 베낄 종이를 만들어도 아무 말 없다가 어제 갑자기 취중에 나를 그렇게까지 욕보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본 것이다.
그러자 정인지는 죄송하다고 말하거나 자기 뜻을 재차 강조하지 않고 "취중이라 기억이 안 납니다"라고 발뺌했다. 필름이 끊겨서 모르겠다고 대답한 것이다.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술에 취한 사람이 소소한 문제에 관한 것도 아니고 국가정책에 대한 문제로 임금을 불쾌하게 했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누가 봐도 정인지가 일부러 임금을 욕보였다는 게 명확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정인지의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결국 정인지는 영의정에서 해임됐다. 이유 정권 영의정 1호가 술자리에서 임금을 욕보인 일로 인해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참고로, 같은 해 하반기에 정인지는 술자리에서 임금을 '너'라고 불러 또 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이유를 임금으로 인정하기 힘들었던 그의 속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신숙주도 그러고 정인지도 그런 것을 보면, 공신들의 눈에는 세조 이유가 그리 존경할 만한 군주로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무시무시한 이미지와 달리 정권 안에서는 권위가 약했던 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