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한팩에 9900원, 나는 그만 욱하고 말았다

[2015 청춘! 기자상] 취업준비생의 연애 이야기, '괜찮아 청춘이야'

등록 2015.12.20 13:09수정 2015.12.20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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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한 팩에 9900원이나 하네" 이 한마디에 눈물이 터졌다. ⓒ pixabay


딸기 한 팩 때문에


"9900원이나 하네."

그 한마디 말 때문에 우리는 다퉜다. 그날은 함께 마트에 갔었다. 먹고 싶은 게 있냐는 그의 물음에 나는 "딸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는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딸기를 발견하고 가격부터 언급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그만 욱하고 말았다.

나도 안다. 한겨울에 딸기가 얼마나 비싼지. 어차피 나도 진짜 사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그냥 서운했다. 한 번쯤은 가격 상관 안 하고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맘껏 말하고 싶었다. 그냥 딸기가 먹고 싶었다고, 돈 생각 안 하면 안 되느냐고 철없는 아이처럼 울었다.

그런 나를 보며 그냥 별 뜻 없이 한 말이라면서 그도 가격 상관 안 하고 실컷 사주고 싶다고, 왜 자기 마음을 몰라주냐고 속상해했다. 결국 눈물 범벅된 서로의 얼굴을 닦아주고 딸기를 먹여주며 마무리됐다. 여기서 '그'는 내 남자친구다.

가난한 사랑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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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 오는 날 그가 나에게 보내준 사진. 우리는 순간을 자주 공유한다. ⓒ 김민정


그와 나는 1년을 만나온 연인 사이다. 우리 둘 다 취업준비생, 내 한 몸 있을 자리 하나를 위해 앞을 보며 달려가고 있는 청춘이다.

그래서 돈은 당연히 없다. 우리가 연애를 하면서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각자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 보충하기도 빠듯했고, 안정적인 수입과 보장된 미래가 없다는 것은 순간의 지출을 가장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무엇을 하든 돈이 얼마가 들지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습관이 됐고, 영화관에 가는 것, 카페 한 번 가는 것도 부담이 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힘들었던 건 단순히 돈이 없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서로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현실과 좋은 것을 해줄 수 없는 미안함이었다.

그에게 꽃 한 송이를 받아도 고맙다는 말보다는 "왜 이런 걸 샀냐"는 말이 나왔고, 추운 날 저렴한 식당을 찾아 헤매느라 지칠 때면 우리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밀려올 때는 지금 우리가 이렇게 연애를 해도 되는 건가 하는 괜한 죄책감이 들 때도 있었고, 서로를 놓아주는 것이 정답인가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한 시인은 말했다.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냐고. 물론 돈이 좀 없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는 건 아닐 거다. 하지만 참 힘들긴 하다.

우리만의 사랑 방식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왔다. 조금 돈이 없더라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고, 서로의 마음을 더욱 보듬어줬다. 특히 돈으로 해줄 수 없는 것을 행동으로 선물해주고자 했다.

그는 아무리 지루한 이야기여도 끝까지 집중하며 들어줬고, 내 생각이 날 때마다 손편지를 써주었다.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는 과정을 마음 졸이며 함께했고, 탈락 때문에 속상할 때 곁에서 손잡아줬다.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곁에 있어주기. 그것이 우리가 해온 사랑이다. 물론 절대 완벽하지 않다. 싸우고, 미워하고, 오해하고, 상처주며, 생채기도 많이 만들어왔다. 하지만 돈이 없다고 서로의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손을 놓지 않았다. 배려와 존중, 그 식상한 말들을 머리로만 알다가 가슴으로 배웠다. 가난한 연애를 하면서 오히려 더 미래를 꿈꾸게 됐다. 사랑이라는 것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이 고맙다.

대통령님, 사랑이 없어진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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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2월 10일 청와대에서 청와대에서 제4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3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 청와대


'5포 세대'를 넘어 이제는 '7포 세대'란다. 이 땅의 청춘들은 일자리를 찾아 헤매며 연애를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인간관계를 포기하고, 그리고 꿈을 포기한다.

청춘들에게 의지가 없다느니, 사랑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느니, 그런 말은 와 닿지도 않을뿐더러 쉽게 던지는 말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애란 돈 없이 무조건 행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 사랑은 끝내 붙잡고 놓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또 다른 명언을 남기셨다. 취업률이 올라가지 않으면, 청년들 마음속에 사랑이 없어진다나.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돈이 없다고 사랑까지 쉽게 포기하는 우리들이 아니라고 말이다. 청춘들이 그렇게 약하고 함부로 사랑할 권리를 내던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그러니 그렇게 판단하지 마시라.

그 사랑은 더 큰 나눔으로

역시 사람은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해야 보이는 법인가 보다. 어렵고 부족함을 느끼면서 내가 갖고 있는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걸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그와 나는 갖고 있는 돈을 조금씩 모아서 보육원에 기부하기로 했다. 사랑이라는 것, 거창한 게 아닌 것 같다. 상대방이 힘들 때 곁에 있어주고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마음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청춘을 사랑하는 시기라고 하는 것 같다. 삶에서 가장 필요한 양분을 마음껏 다져둘 시기여서 청춘이 사랑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부족함과 함께한 그와의 연애는 더 넉넉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계기가 돼줬다.

우리가 사랑한 시간 그리고 사랑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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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상에서 예비 부부 컨셉으로 상담을 받고 껴봤던 커플반지. 그때 상담해주신 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에게 멋진 추억을 선물해주셨어요. ⓒ 김민정


우리는 지금도 함께 있다. 만나고, 밥 먹고, 손잡고 산책하고, 눈 맞추며 이야기 나눈다. 그리고 여전히 돈은 없다.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처럼 한순간에 좋아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우리가 언제까지 연인으로 함께할지는 모르겠다. 영원한 사랑을 담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으므로 그저 지금에 충실할 뿐이다. 하지만 미래가 어떻게 되든 우리가 사랑한 시간은 빛나는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당당하게 땀 흘리는 날들은 곧 행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우리를 안쓰럽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마음으로 공감할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이 읽는 이에게 작은 미소라도 머금을 수 있게 한다면 행복할 것 같다.

가난한 사랑의 노래를 이제는 밝고 씩씩하게 맘껏 부르고 싶다. 청춘들이여, 사랑하자.

○ 편집ㅣ김지현 기자

#청춘 #사랑 #연애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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