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경북 칠곡군 기산면 영리에서 농업인이 칠곡군 내 첫 모내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칠곡 왜관읍 매원리에는 광주 이씨 집성촌이 있다. 아무 문이나 열고 들어가도 그 사람을 내가 "아재"나 "아지매"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었다. 아마, 아재나 아지매일 테니까. 길에서 만나는 낯모르는 모든 사람들을 나는 "아재요"라고 불렀다.
할머니는 몸이 성하실 때까지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셨다. 큰아들이 대구로 갔다가 서울로 가고 손녀들이 대학을 다 갈 때까지도. 길거리에서 소가 똥을 싸고, 그냥 콩잎을 따서 우적우적 씹어먹는 곳이었다. 오빠랑 나는 대숲에 들어가서 대나무를 잔뜩 꺾어와 우물에 죄다 던져넣었다가 직쌀나게 혼난 적도 있다.
왜관에 사는 광주 이씨들은 항일운동을 열심히 했다며 자랑스러워하던 동네 아재의 수다를 들어주던 기억이 난다. 그 아재네 집에는 커다란 셰퍼드가 두 마리나 있어서, 동생과 나는 늘 무서워했다. 스스로를 유학자라고 생각하는 할배들은 꼬장꼬장했다. 그 마을에는 농사를 지을 때는 리어카를 타고 다니면서도, 읍내에 나가기 위해서는 두루마기를 입는 할배들이 많았다. 아빠의 친구는 자기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아빠한테 도련님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그랬다며 껄껄 웃기도 했다.
안양으로 이사 오고 나서, 첫 대통령 선거 날 우리 집에는 전화가 두 통 정도 걸려왔다. 할배들은 서울 올라갔다고 맘 바꿔먹지 말고 1번 잘 찍으라고 아빠에게 말했다. 나는 그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했었다. 투표권은 없었지만.
많이들 돌아가셨지만, 살아계신 할배들은 이번에도 박근혜를 찍었을 것이다. 할배들의 그 똘똘하던 "스의영이(정말 한글로 표기하기 어려운 발음이다)"가 뺄개이가 되어서 민주노동당에도 가입했다가, 자기 첫 책에 사회주의자라고 썼다가, 데모도 열심히 하면서 살고 있다는 걸 알면 무척 화가 많이 나실 것이다.
칠곡에 사드가 설치된다고 한다. 칠곡 군수가 머리를 밀었다고도 한다. 나는 내 조그만 시골 마을이 자꾸 텔레비전에 나와서 괜히 반갑다. 그렇게 좋은 이야기가 아닌데도 괜히 그렇다. 그 할배들은 분명 박근혜를 찍었겠지만, 나는 내게 다정하던 어른들을 기억한다. 무슨 일이 있었건 간에, 나는 그 할배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기를 바란다. 논밭에 가득한 쌀과 소똥 냄새와 할배할매들의 웃음을 나는 다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