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주도로 탄핵 정국을 일으켜야 한다는 일베 이용자의 주장.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사진은 지면의 한계 상 생략한 채 갈무리했다.
일베 갈무리
어쩌다가 박 대통령이 일베에서 조롱 당하는 신세가 된 것일까? 현재 일베 한편에서는 보수가 이제 그만 박 대통령 카드를 버리고 대선 레이스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기문대통령'이라는 이용자는 25일 오후 1시 56분경 "박근혜 빨리 버려야 한다. 안 그러면 보수 몰살한다"며 "새누리당에서 먼저 탄핵 정국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
박 대통령의 의혹 인정, 사과 뉴스 속보가 널리 알려지기 2시간 전쯤 일이다. 이 게시물은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다가 추천 304, 반대 350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얼핏 보면 탄핵 찬성 우세 분위기는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반응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해당 이용자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진을 글과 함께 올려놓았다. "글까지는 이해하는데 사진이 문재인인 거 보면 분탕이네ㅋㅋㅋ"(야동왕***)와 같은 댓글처럼 일베 이용자들은 야권을 경계하는 성향이 있다. 이들은 평소에 야권이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서 '분탕'을 일으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포함해 강한 대인 불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홍어(호남인을 비하하는 말) 새X 이때다 하고 선동질 하는 거 보소"(Hit***) "갑자기 좌좀들(진보를 비하하는 말) 풀발기하노. 김정은이 지령내렸나? ㅋㅋㅋ"(마구**) " 같은 댓글들처럼 시도 때도 없이 호남과 북한을 끌어들이며 지역차별과 색깔론을 일삼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둘째, 일베의 아마추어 논리 실증주의 성향 때문이다. "사실도 아니고 의혹으로 탄핵? 진짜 급식 반 홍어 반이네ㅋㅋㅋ 불법이 사실로 밝혀지면 감방에 쳐넣든지 하고 아니면 닥쳐ㅋㅋㅋ"(8***)와 같은 댓글이 이런 맥락이다. 일베 이용자들은 어떤 권위를 가진 전문가 집단이(특히 수사기관, 사법부가) 공인해주지 않은 사안은 정치적 판단도 내릴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종종 보인다. 물론 사람이라면 누구나 특정 사건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
또한 중요한 사실과 그렇지 않은 사실을 분별해 종합적인 인식을 구성한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판단을 내릴 때는 법리적 정보까지는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JTBC 보도로 알려진 정보만으로도 대통령에게 윤리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뿐더러 대통령 스스로도 사과를 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가치관이 논쟁을 벌일 수 있는 영역이 정치임에도 일베 이용자들은 종종 '권위'에 의존한다. 법이 대신 판단해주지 못 하면 스스로 가치 판단도 내리지 못 하고, 정치적 주장을 적극 내세우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