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내에서 세대 갈등, 노인 혐오 양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 '틀딱'이란 용어 사용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일베 갈무리
한편 일베 이용자들은 '멘붕'에 빠진 상황이다. 일베 내에서는 농담 반으로 '일베가 이러다가 망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일베 이용자들은 다 똑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주의 깊은 관찰자들은 일베가 오랫동안 분열을 겪어온 것을 알고 있다.
일베는 주류 이용층인 '짤게이(짤방 게시판 이용자)'와 비주류 이용층인 '정게 할배(정치게시판 할배)'로 나뉘어 사이가 좋지 않고 서로의 의도를 의심하며 믿지 못한다. 짤게이들은 대체로 보수적 성향이나, 문체나 설교조의 말투 등 기성세대일 것으로 추정되는 정게 할배들과는 사뭇 다르다. 왜냐하면 진지한 이념을 공유하며 연대를 이루는 전통적 의미의 정치적 지지 기반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소속감 따위는 없다'.
애국심과 의리를 강조하며 정부·여당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하면 당장 '틀딱(틀니 딱딱)'이라는 조롱이 돌아오는 이유다. 따라서 짤게이들은 "일베가 이 나라의 중심을 지키고 있어요"라는 말을 기성세대의 시대착오적인 의식 과잉 정도로 생각해왔는데, 이번 JTBC 보도로 권력 기관의 조직적인 모니터링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 확실해져 '멘붕'에 빠진 것이다.
짤게이들은 기성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조롱함으로써 오는 쾌감에 주화입마된 젊은 우익들이기 때문에 정게 할배들의 의식 과잉에는 꾸준한 거부감을 표현해왔다. 이처럼 일베 내에도 세대 갈등이 작동하는 데다가, 일베 이용자들의 유난스러운 대인 불신에 청와대의 모니터링 파문이 기름을 끼얹었다. 현재 일베는 그야말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방불케 하고 있다.
가령 '국정원일베담당'이라는 이용자는 "현재 틀딱충들 수준이 이렇다....(feat 우병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정치 게시판에서 고운호 <조선일보> 객원기자가 팔짱을 끼고 검찰조사를 받는 우병우씨를 찍은 특종 사진에 대한 조작설을 제기하면서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들을 비호하려는 정게 할배들을 공격했다. 자기가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은 추천 못지 않은 반대를(추천 357, 반대 299) 기록했다.
댓글을 보면 "작성자도 분탕... ㅁㅈㅎ(반대)"(시진핑도적떼), "댓글 하나 가져와서 XX하네 XX아 뒤져라 진지충들까지 아주 지라를 하네"(심리학과생), "틀딱 XXXX들이 와서 ㅁㅈㅎ 누르네"(변수능봄) 등 실체적 진실이 분명한 사건까지 댓글에 대댓글까지 달리면서 서로의 의도를 의심하고,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싸우고 있다. 일베에서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이런 식의 분위기를 쉽게 포착할 수 있다.
일베는 그동안 진보좌파들이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나라를 '분탕'친다고 여겨왔다. 집회 현장에서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수만 가지 선택을 할 수 있고 집회의 전반적인 경향성을 입증하지 못 하는 이상 각각의 선택은 맥락에 따라 평가돼야 한다. 그러나 일베는 손쉽게 '변질' '불법' 딱지를 붙이며 정리 처분해왔다. 이제는 본의 아니게 그들이 진보좌파를 낙인찍어왔던 바로 그 방식대로 그들끼리 '분탕'으로 낙인 찍고 또 낙인 찍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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