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프러제트> 중 한 장면.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이런 잘못된 의식들이 모이고 모여서 지금과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아닐까. 때때로 성차별은 감정을 상하게 할 뿐만이 아니라 개인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까지 침해하는 경우도 생긴다. 여러 경우가 있겠지만, 그중에 바로 최악은 이것. '여자가 뭐 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아?'와 같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경우이다.
여자와 남자로 구분 짓기 이전에 한 국가에 국민으로서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텐데 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것일까? 올해 개봉했던 영화 <서프러제트>의 첫 장면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여성은 침착하지 못해서 정치적 판단이 어렵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면 사회구조가 무너진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12년 런던,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20세기 초 여성참정권론자의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러니깐 지금으로부터 무려 104년 전에 있었던 일을 다루고 있는 영화인 셈이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2016년인 지금도 여전히 여성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필자는 이들은 우리와 같은 공간에 살고 있긴 하지만 그들의 의식 수준은 2016년이 아닌 1912년에 머물러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생각한다. 성인이 되고 나서 겪는 성차별의 가장 큰 대표적인 예로는 바로 남녀 간의 임금 격차 문제와 특정 직업군에 몰린 남녀 성비율을 들 수 있겠다. 우선 임금 격차 문제부터 놓고 보자면, 이것은 절대 한국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같은 업무, 같은 학력, 같은 노동력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남성보다 현저하게 낮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만한 사실일 것이다. 기사를 통해서 보는 것보단 실제 체감하고 있는 게 훨씬 클 것으로 생각한다.
다음은 특정 직업군에 몰린 남녀 성 비율에 관련된 얘기인데 다양한 직업군들이 있겠지만, 흔히 '경리'라는 직업을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남성보단 여성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예전부터 남성에 비해 여성을 더 많이 채용하는 분위기였고 현재도 그렇다. 또 반대로 운송업에서는 예전부터 여성에 비해 남성을 더 많이 채용하는 분위기였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서구의 경우, 유명인들이 본인의 영향력을 행사해서 남녀 간의 임금 격차 문제를 대대적으로 발언하고 이슈화하고 있다. 또, 노르웨이나 덴마크, 스웨덴이 속한 북유럽의 경우엔 남성들이 대체로 많이 종사할 거라고 생각하는 토목업에도 여성들이 남성들 못지않게 많이 종사하고 있다.
문제는... '나와 관련 없다'고 생각하는 것우리가 사는 사회엔 성차별 외에도 다른 여러 종류의 차별들이 존재한다. 성차별은 차별이란 큰 범주 안에 속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차별을 막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까?
필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차별을 지속시키는 것은 '무관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성인이 되어선 직장에서까지 계속해서 각종 차별을 받아왔지만, 처음엔 '이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개개인이 각자 사는 게 급급한 나머지 '차별'은 이미 '나'와 아주 동떨어진 문제라고 치부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개개인이 각자 사는 게 급급한 것 또한 또 다른 '차별'에서 비롯된 문제일 텐데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각종 차별과 관련된 문제들을 끊임없이 발언하고 토론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 아니어도 누군가는 이 문제에 대해서 거론하겠지' 혹은 '내가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한다고 해서 과연 달라지는 게 있을까?'와 같은 생각들이 많아지면 우리가 바라는 '살기 좋은 세상'은 현실이 아닌 이상에만 그치고 말 것이다.
무언가 변화시키고 싶다면 그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 그 변화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정말 변화하길 바란다면 변화시키고 싶은 것에 대해서 계속해서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 생각만으론 절대 변화시킬 수 없으니 말이다. 필자는 차별의 시작이 학교와 가정이라고 생각하기에 어릴 때부터 모든 차별을 항상 경계 시하고 차별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또, 불합리한 상황에선 침묵할 것이 아니라 스스럼없이 발언할 수 있는 용기와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의 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의 형성을 위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분명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완벽하지 않다. 사실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사회엔 너무나 다양하고 개개인의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명 두 명씩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과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하기 시작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들이 같이 참여함으로 인하여 차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점차 조금씩 줄여나간다면 언젠가는 차별이 없고 불합리한 상황이 없는 완벽한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필자는 그 '언젠가'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마주하길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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