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에게 질문 쏟아내는 기자들지난 2014년 12월 당시 '비선 실세'로 지목된 정윤회씨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출석하는 모습.
이희훈
지난 2014년 말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문건' 사건 당시 대통령실 민정비서관실이 수사에 개입해 사건 관련자를 회유했다는 당사자 증언이 나왔다. 검찰에 압수당한 휴대폰에는 최순실씨가 대한승마협회를 주무른다는 내용의 정보가 있었지만 이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같은 사실을 밝히고 나선 이는 한일 전 서울지방경찰청 경위다. 그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에서 박관천 경정의 사무실에 침입해 청와대 문건 14건을 복사해 최경락 경위에게 전달하는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문건을 전달받은 최 경위가 언론에 유포했다고 결론 냈지만, 최 경위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중앙일보> 11일자에 따르면, 한 전 경위는 체포당하기 하루 전인 2014년 12월 8일 오후 4시경 대통령실 민정비서관실 P행정관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서울 남영동에서 만났다고 주장했다. 한 전 경위는 P행정관은 '청와대 문건을 복사해서 최경락 경위에게 넘겼다고 진술해라, 그럼 책임을 묻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한 전 경위는 "(P행정관이) 하루 전 내가 검찰에 제출한 휴대전화 속 정보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 전 경위는 자신이 문건을 복사해 최 경위에게 넘긴 것은 인정했다. 하지만 당시 최 경위는 "정윤회 문건을 절대로 기자에게 주지 않았다"며 "죽어도 못한다. 내가 한 짓이 절대 아니다. 너 회유당하면 안 된다"고 버텼다고 전했다. 청와대가 최 경위를 문건유출자로 조작하면서 한 경위를 회유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최 경위는 자살을 택했다는 것이다.
최 경위가 구속영장 기각으로 석방된 뒤 자살하기 전에 남긴 유서엔 한 전 경위를 향해 "민정비서관실에서 너에게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당연히 흔들리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한 부분이 있다. 검찰의 수사가 계속되던 당시에도 청와대가 사건을 왜곡·축소하기 위해 검찰 수사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지만. 한 경위는 변호인을 통해 이를 부인했고 검찰도 의혹을 일축했다.
검찰이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 정황을 이미 알고도 덮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 전 경위는 "(정윤회 문건 사건 당시) 난 그때 승마협회 비리를 조사하고 있었다. (검찰에 압수당한) 그 휴대전화에 이와 관련한 통화 내용들이 녹음돼 있었다. 최순실이 대통령 개인사를 다 관장한다는 정보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 검찰 수사 때는 아무도 이에 대해 묻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정농단 사건을 '문건 유출'로 왜곡·축소... 우병우와 검찰의 합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