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서 대단하다" "남자친구는 있어?"... 이런 질문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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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깨달음은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바꿔놨어. 결국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혼자 한 배낭여행이 대단하다는 칭송을 받게 되었고, 나의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은 국문과가 아니라 여자라서 더 돋보이는 거였어. 나노 블록과 퍼즐 맞추기를 좋아하는 것도, 달을 보는 걸 좋아하는 것도, 다 내가 여자라서 그렇다고 하더라.
그러고 보니 똑같은 디자인의 베개커버도 오빠는 파랑색, 나는 분홍색. 오빠와 아빠는 파란색과 보라색 칫솔, 나와 엄마는 분홍색과 주황색 칫솔. '그러고 보니'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불편한 거였다고. 단지 내가 운이 좋아서 몰랐던 것을 불행하게도 깨닫지 못했을 뿐.
우리는 단일민족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성별에서 기인한 고정관념이 어쩌면 인종차별만큼이나 잔인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어. 단번에 알 수 있는 외형적인 조건으로 첫인상을 결정짓고, 그 첫인상이 앞으로의 행동에 계속해서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폭력성은 직접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아프더라.
그리고 내가 가장 잔인하다고 느꼈던 건, 차별이 오히려 칭찬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 자체였어.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긴 맞았는데, 얘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고 그걸 먹는 걸로 착각하고 넙죽 받아먹는 꼴이지. 나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모성이라는 것과 연관돼야 했고, 모성애는 위대하고 신성한 것으로 후광효과가 나야했어. 그리고 남성이라는 것과 음양의 조화를 이뤘을 때 비로소 완벽하고 또 완성될 수 있는 반쪽짜리 존재였던 거야.
사실, 내 이름은 유진이가 아니었대아빠가 아는 분이 지어주신 이름은 이룰 성, 문학 문. 성문이었어. 그런데 혹시라도 딸내미가 놀림을 받을까봐, 이름을 싫어하진 않을까 걱정했던 엄마 아빠는 성문과 획이 똑같은 부드러울 유, 보배 진. 유진으로 나를 출생신고 했다고 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유진이라는 이름으로 놀림을 받은 적은 없지만 나 사실 성문이라는 이름이 있었어'라고 하면 다들 여자애 이름이 성문이가 뭐냐며 웃더라고. 문학 쪽으로 크게 되라는 염원이 담긴 이름보다 똑같은 획을 위해 끼워 맞춰서 제대로 된 의미도 없는 유진이가 훨씬 낫대.
여자애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로 국문과에 다니면서 칼럼 쓰기를 좋아하고, 에세이를 사랑하는 나는 성문이로는 단 하루도 살아보지 못한 채 유진이로 24년을 살아왔어. 정작 나는 유진이보다 성문이가 더 마음에 드는데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나 요즘 유진이가 아니라 성문이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해. 왜냐면 나는 반쪽짜리 존재가 아니고, 여자라는 성별 하나로만 결정되는 사람도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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