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난 두 권의 책이 나를 잡아 끌었다. 역사 속에서 인상적인 삶을 살아간 여성들을 다룬 <길 밖에서>와 <길을 찾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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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유년 시절, 세상에 나의 자리는 없었다. 그저 '너의 것'이라고 지정받은 자리는 있었지만, 그 위치는 나에게 이질적으로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특정한 방식의 삶을 살 것이 요구되었다. 옷은 이렇게 입어야만 하고 말은 저렇게 해야한다. 이런 제스처는 취해선 안 되며 드러내선 안 될 취미나 관심사도 존재한다. 공동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평범한 다수가 되는 방법을 배워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맞추어 가는 삶이 행복할 리는 없었다. 24시간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몸에 배지도 않은 생활 방식을 수행하는 일은 매우 피곤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도대체 내가 왜,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다고 남들은 하지 않는 이 고생을 해야할까. 나는 저지르지도 않은 죄 때문에 벌을 서는 아이가 된 심정이었다.
그렇게 소외감과 답답함을 느끼며 살아가다, 나는 우연히 도서관에서 두 권의 책을 마주했다. 역사 속에서 인상적인 삶을 살아간 여성들을 다룬 <길 밖에서>와 <길을 찾아>였다. 처음에는 심심함이나 달래 볼 요량을 집어 들었지만, 이내 그 책은 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정도로 나를 잡아 끌었다. 당시에는 처음 만난 실로 놀라운 인물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최초로 여성의 권리를 선언한 올랭프 드 구주와 메어리 울스턴크래프트.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 후보로 나선 빅토리아 우드헐. 성별에 따른 사회적 위치 구분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던 시기,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주장한 시몬 드 보부아르까지. 그리고 책을 읽은 나는 깨달았다. 이 사람들의 앞에 붙은 '여성으로서 최초로'라는 수식의 의미를. 그들 역시도 세상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자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던진 질문 즉 그 인물들과 내가 처했던 상황은 유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부당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맞서 싸웠다는 것이다. 이들은 철학에서, 문학에서, 정치에서 그리고 보편적 인간과 시민의 지위에서 여성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투쟁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일을 한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라고 불림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레 페미니즘 자체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몇 권의 여성주의 도서를 읽은 후, 나는 말 그대로 눈이 새로 뜨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저자들은 나도 미처 몰랐던 차별과 배제의 현실을 펼쳐 보였다. 물론 그 현실은 대부분 나와 다른 성별인 '여성'의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별 규범을 전제로 원하지 않는 위치를 강요받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순간 문제적 존재가 되는 경험은 나의 것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또한 페미니즘은 이러한 현실의 근본적인 원인을 내게 알려주기도 했다. 전혀 자연적이지 않은 양성의 구분, 그리고 그러한 구분이 규범으로 변한 과정과 이유, 이를 토대로 탄생한 불평등하고 유해한 성별 권력 관계를 말이다. 사실 대학에 들어간 이후 나는 폐쇄적인 집단 생활을 할 일이 거의 없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폭력과 혐오로부터의 상당한 자유를 의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페미니즘과 그것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모른척 할 수는 없었다. 바로 어린 시절의 나 때문이었다. 그때의 나는 현재의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언젠가의 당신인 내가 겪던 고통들을 여전히 마주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이 그 모든 삶들을 모른 척하고 살 수 있는가. 또한 나를 아프게 한 갖은 차별과 배제 위에 만들어진, 그렇게 기득권이 부여된 남성의 자리 위에 당신은 아무 질문 없이 설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