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업종 노동자의 전체 비율로 보자면 여성이 높지만 그중에서 프로페셔널로 취급받는, 소위 '있어보이는' 영역의 대부분은 남성이다.
sxc
그래도 나는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잡지 쪽에서 일해왔기에 직장 내에서의 성차별은 덜했다. 물론 남자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만연한,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한 여성을 향한 편견과 성차별적 발언들까지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이 문제는 취재를 나가면서 더욱 심해졌다.
나는 음식 전문 기자다. 음식이라는 분야가 굉장히 재미있는 것이 생활 속 음식 그러니까 집밥의 영역, 아마추어의 영역은 완전히 여성의 것으로 치부되지만 그 반대로 프로페셔널의 영역, 그러니까 권위가 주어지는 영역은 완전히 남성의 것으로 치부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남성은 프로, 여성은 아마추어'라는 성차별적 인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외식업종 노동자의 전체 비율로 보자면 여성이 높지만 그중에서 프로페셔널로 취급받는, 소위 '있어보이는' 영역의 대부분은 남성이다. 셰프가 그렇다. '주방에서의 일은 위험하고 힘을 쓰는 육체노동이기에 여자보다 남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정론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정말 그게 다일까? 해외에서도 셰프의 남성 쏠림 현상에 대해, 더 이상 체력 차이에서 나오는 어쩔 수 없는 일인 척만은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온다.
주방의 노동력을 통솔, 지휘하는 셰프는 상당한 권위와 책임이 실리는 직책이다. 주방은 군대문화와 비슷하다고도 한다. 여성에게는 당연히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남성들이 여성에게 권위를 일임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그 안에서도 고군분투하는 여성 셰프들은 존재하지만, 이 적디 적은 소수의 인원을 증명 삼아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이와 반대로 상대적으로 '안 알아주는', 소위 '주방 아줌마'의 영역을 생각해보자.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 아닌 서민적인 음식점의 주방 요리사가 여자라면 '주방 아줌마'라고 불린다. 여성이기에 하는 일의 가치를 저평가해서 부르는 말이다. 같은 서민적인 음식점이라도 주방의 요리사가 남자라면 '주방 아저씨'라고 부르는 일은 현저히 낮다. '아줌마'와 '아저씨' 두 단어의 사회적인 쓰임조차 차이가 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비슷한 예로 분명히 하는 일은 비슷한데, 남자의 경우 그 단어를 붙일 만한 경력이 없어도 '셰프'라 불리고 여자는 '요리연구가'라 불리는 일을 수도 없이 봤다.
매일의 밥을 차려내는 일은 어머니가, 부인이, 딸이, 여성이 하는 일이면서 같은 요리라도 프로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갑자기 남성의 영역으로 뒤바뀐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셰프와 요리사를 취재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그것도 아세요?'다. 음식 전문 기자로 일하며 직업적 전문성을 갖기 위해 나름의 공부를 많이 해왔다. 하지만 많은 요리사들은 '항상' 나를 별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으로 봤다.
당연히, 기자가 셰프나 요리사보다 요리의 영역에서 모르는 것이 많을 수 있고 기자라면 모름지기 취재원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그런데 얘기를 잘 듣다가도 거기에서 더 나아간 질문을 하면 의례 '그런 것도 아세요?'라는 말이 돌아온다. 이런 일이 계속 생기다보니 '다른 기자에 비해 나는 상대적으로 많이 아는 기자인가 보다'라며 칭찬으로 받아들인 적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내가 남자 기자였어도 항상 '그런 것도 아세요?'라는 말을 들었을까?
전문기자에게 "그런 것도 아세요?"라고 묻는 남자들의 심리문제는 셰프나 요리사 뿐 아니라, 비전문인조차 내가 음식기자라고 하면 음식 이야기를, 자신의 지식을 '알려주려'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백이면 백, 남자다.
소위 미식가라고 불리는 이들을 보자. 미식가라는 영역도 재미있는 것이, 비싼 레스토랑 가서 돈이나 펑펑 쓴다고 욕 먹는 것은 항상 젊은 여성층이지만(인터넷의 댓글창을 보자, 허영심에 가득찬 된장녀 혐오는 이 기사 댓글에도 달릴 것이다) 미식가로 인정 받는 대부분은 남성이다. 그것도 중장년층의 남자다.
같은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해도 그게 30대의 여성이라면 "맛도 모르면서 허영심에 비싼 밥이나 먹는다"고 욕을 먹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그게 40~50대의 남성이라면 "인생의 여유를 아는 미식가"라 불릴 일이 많다는 거다. 소위 '미식 블로거'로 꼽히는 네이버 블로거의 상당수가 남자다. 앞의 '셰프나 요리사 vs. 주방 아줌마' 구도와 마찬가지로 여성이 하는 일에는 권위가 실리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여자들조차도 같은 설명을 해도 여자 블로거보다 남자 블로거의 말을 더 믿어버린다.
고급 식문화를 향유하는 데에 남성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남녀간의 급여차이, 빈부격차도 한몫한다. 어쨌거나 이 자칭, 타칭 남자 미식가들은 내가 음식 기자라는 것을 아는 순간 "오빠가 알려줄게"의 태도로 자신의 지식과 안목을 줄줄 읊기 시작한다.
그들이 하는 말 중에 재미있는 것이 있다. "이런 것도 드실 줄 아세요? 여자들은 잘 안 좋아하는데" 이 말은 "이런 것도 아세요?"의 다른 버전이며, 웃긴 사실은 이게 칭찬이란 것이다. 여자들은 잘 모르는 맛, 그걸 알다니 의외이며 그 정도면 인정한다는 뜻이다. 여자들은 진짜 맛을 잘 모른다는 뜻이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맛', 이것은 맛이 진하거나 고기 혹은 고기의 내장 등 부속물을 사용한 요리가 주가 되며 미식의 영역에서 소위 '깊이 있는 맛'이라 취급된다.
그럼 무슨 맛이 '여자들이 좋아하는 맛일까? 보통 산미가 있는 가벼운 음식, 채소가 주가 되는 양식 혹은 한식이건 양식이건 뭐건 무조건 치즈가 범벅이 된 음식, 달콤한 디저트 류를 '여성이 좋아하는 맛'이라 하며, 남성 미식가의 입에서 "이건 여자들이 좋아하는 맛이네"라는 말이 나온다면 '깊이는 없고 내 취향도 아니지만 대중에겐 먹힐 맛이네'라는 속뜻으로 쓰인다.
뭐 실제로 통계상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단백질을 섭취하긴 하지만, 문제는 디저트나 치즈 범벅 괴식을 좋아하는 남자, 고기를 좋아하는 여자도 많다는 것을 논외로 하더라도 '남자가 좋아하는 맛', '여자가 좋아하는 맛'에 매겨지는 등급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셰프건 요리사건 미식가건 아니건, 남자들은 나에게 음식에 관해 가르치려 들었다. 그것도 내가 전문 음식 기자라고 말할수록 더욱더!
'여자'라는 이유로 직업인으로서의 전문성도 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