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국대학의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연합뉴스
"아이고 축하드려요, 그런데 박사학위 받은 여자들은 남자들이 부담스러워하는데. 여자들이 박사만 받으면 페미니스트가 돼서."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미국 대학의 박사과정에 드디어 전액 장학금 및 생활비와 함께 합격하게 됐다. 추천서, 학업계획서, 각종 영어시험, 학부 및 석사 성적, 연구실적 같은 것들을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겨우 완성하여 마침내 받게 된 값진 두 글자, '합격'
이 두 글자 뒤에 따라오는 건 주변의 열렬한 축하도 있었지만, 똑같이 열렬한 걱정도 있었다. 박사과정은 5년 이상 오래 걸리는데 그동안 남자를 어디서 만날 거냐, 결혼은 어떻게 할 거냐, 여자가 잘나면 남자들이 기가 죽어서 결혼을 안 하려고 하는데 어쩔 거냐... 공부로도 성공하고 예쁜 가정을 이뤄 아이를 둘 낳고 사는 게 꿈이던 나는 몰려드는 위기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 아무도 날 안 좋아해 주면 어떡하지. 노처녀로 늙어가게 되면 어떡하지. 그런데 어떡하리, 이미 합격한 걸. 내가 이 두 글자를 얻어내기 위해 바쳤던 노력과 눈물이 얼마인데.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걱정해서 해 주는 말이란 건 잘 알겠지만, 이 소중한 마음만 받았다. 걱정하는 말은 내버려 둔 채.
대학원으로 돌아오는 선배들, 이유가 있었다엄마는 내가 세 살 때부터 2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만 하면 너는 다 이룰 수 있어"라고 말해왔다. 엄마 말이 맞는 것만 같았다. 초등학교에서도, 중학교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대학교에서도, 여학생들은 남학생과 비등하거나 더 높은 성적을 냈고 선생님과 교수님들께 총애를 받았다.
나 역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돈을 많이 벌어 부모님을 호강시켜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국제기구에 취업해서 국제공무원으로 세계의 가장 빈곤한 지역을 누비며 인도적 지원을 실천할 수도 있을 것 같았고, 자상한 남편과 예쁜 아이 둘과 함께 하는 가정도 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두 내가 열심히만 하면. 열심히만.
꿈은 꿈답게 산산이 깨졌다. 석사과정을 시작했을 때였다. 이름만 들으면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아는 기업에 입사해서 상도 여럿 탈 정도로 능력을 뽐내던 선배들이 모두 대학원에 있었다. 이 선배들이 대학원에 다시 온 이유는 하나 뿐이었다. 결혼 및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이후 재취업을 위해.
선배들의 예전 직업은 언론부터 교육 및 사업까지 천차만별로 다양했지만, 그만둔 이유는 천편일률이었다. 남편이 그만두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설득해서, 혹은 시가에서 남편 및 아이를 뒷바라지하길 바라서, 그것도 아니면 맞벌이로는 아이를 도저히 돌볼 수가 없어서. 아, 이 선배들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노력했고 능력도 인정받았는데 모두 그만뒀구나. 사회 여러 분야에서 능력을 맘껏 발휘하다가도 남편과 아이가 생긴 이후에는 그만둬야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