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셔츠 소매 걷어 올리는 안철수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강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청년일자리 be 정상회담’에 참석해 청년들의 고충을 듣기에 앞서 와이셔츠 소매를 걷고 있다.
유성호
안철수가 뜨고 있다. 민주당 경선의 컨벤션 효과를 언급할 새도 없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2위로 치고 올라갔다. 양자구도가 가능하냐는 냉소에도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 후보와 1대1 구도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민주당 경선이 끝나기 전 기껏 3~4위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변화다.
일각에서는 여론조작이나 보수언론의 '밀어주기'를 언급하기도 하지만, 안철수의 지지율 상승은 구도의 변화에서 기인한 결과로 보는 것이 옳다. 주인 잃은 보수표가 반기문, 황교안을 거쳐 홍준표 주위에서 떠돌다가 안철수에게 안착하는 모양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안철수 후보가 보수층의 새로운 메시아로 등극했음을 알 수 있다. 4월 7일~8일 진행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율 37.2%를 기록한 안철수 후보는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있고, 42.6%를 기록한 문재인 후보는 중도·진보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전통적인 지역균열을 따라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안철수 후보는 대구·경북(안 37.6%, 문 34.4%)은 물론 광주·전남(안 48.9%, 문 45.5%)에서도 소폭 앞섰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아직 문재인 후보가 1위를 놓치고 있지 않지만, 더 이상 독주체제로 보기는 어렵다. 이제 대세론이 아니라 실력으로 승부를 가려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안철수 지지율 상승의 원인... 중도화 전략의 적중 + 운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이렇게 반등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국민의당 창당전략의 연장선에 있는 '중도화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민주당을 박차고 나와 국민의당을 창당하면서 '민주당의 오른쪽'과 '새누리당의 왼쪽'을 규합, 양당체제 사이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갈 전략을 세웠다.
이 전략은 20대 총선에서 적중했다. 아직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기 전, '새누리는 싫지만 더민주는 탐탁지 않은', '더민주도 마음에 안 들지만 새누리당은 더 싫은' 표를 쓸어 담았다.
그렇다고 이런 중도화 전략이 안철수의 반등을 온전히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중간지대 전략은 확장력이 큰 만큼 고사될 가능성도 크다. 이번 대선에서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있는 보수정당이 견고하게 살아 있었다면, 안철수의 전략은 성공보다 실패의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대선과 총선은 득표 분배의 가능성이 다르다.
그러나 갈 곳 잃은 보수표는 반기문에게 옮겨 갔다가 불출마 선언으로 방황했고, 황교안에게 다가섰다 속절없이 원망만 했다. 일부는 민주당 안희정 도지사에게 고개를 돌렸지만, 사실 민주당 경선에서 2위와 3위표는 애시 당초 없는 것으로 봐야했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수는 다시 안철수에게 구애하고 있다. 결국 안철수의 지지율은 이쪽 저쪽 다 걸친 중도화 전략에다 보수층의 궤멸, 적절한 시기에 따라준 운이 합해진 결과다.
운이 좋았다고 폄훼할 필요는 없다. 선거라는 것에서 '운'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었던가?
문재인, 다시 독주는 가능할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문재인 후보측이다. 줄곧 1위를 독주하다 막상 민주당 경선이 끝나자 대세론이 흔들리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전혀 예측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18대 대선에서 48%를 득표한 문재인은 최대 규모의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차기 지도자로 우뚝 섰다. 그러나 그의 지지율은 좀처럼 40% 선 언저리에서 왔다 갔다 했을 뿐, 매우 유리한 국면에서도 더 이상 치고 나가지 못했다. 후보 난립의 조건에서는 부동의 1위였지만 별다른 대항마가 없는 조건에서도 정체되었던 지지율은 후보 구도가 정립된 이후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
결국 지금 안철수의 맹추격은 문재인의 입장에서는 '올 것이 온 것'이다. 무난한 대세론을 확립할 정도로 지지율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차순위 후보들의 이합집산이나 상대 진영 지지자들의 전략 투표는 예상할 수 있는 결과다.
게다가 박근혜의 구속은 문재인의 가장 큰 전략적 프레임이 될 수 있었던 '정권 심판'의 슬로건이나 '적폐청산' 구호를 약화시켰다. 대통령 한 명 끌어 내렸다고 오랫동안 썩은 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테지만, '대통령을 끌어 내리고 감옥에 보낸 사실'은 구호에 대한 간절함을 약화시킨다. 오랫동안 이어진 '1위 후보'의 타이틀 역시 박근혜가 구속된 지금, 박근혜를 대신할 보수후보가 죽을 쑤고 있는 지금, 유리하지 않다. 야권 후보로서 가지는 도전자의 이점을 잃는다.
또 하나의 핵심적인 문제는 문재인의 대선 승리를 위한 전략이 안철수의 중도화 전략과 상당부분 겹친다는 점이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48%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민주당은 줄곧 중도화 전략을 구사해 왔다. 대선 과정의 다양한 의혹에도 너무 쉽게 패배를 시인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의 증거가 속속 폭로되고 정당이 해산되었으며, 각종 부패의 실마리들이 줄줄이 드러나도 비겁할 정도로 앞장서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중도화 전략은 박근혜 정신을 계승하려는 보수 후보를 대상으로 했을 때는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동일한 전략을 구사하는 안철수에게는 승산이 없다. 그 위치는 이미 안철수가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의 딜레마... 정답은 정면 승부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