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안에서 벌어진 성폭력 증언을 모으고 있는 스쿨 미투 페이지.
스쿨미투 갈무리
2016년 10월에 시작된 #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이후 검찰 내 성폭력 등 미투 운동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25일에는 스쿨미투-학교 성폭력, 성차별을 고발하는 페이지(
관련 링크)가 개설됐으며, 지난 4일까지 14번째 스쿨미투 증언이 들어왔다(관련 기사 :
'미투' 열풍 초·중·고교로 확산 조짐... 대학가 폭로도 계속).
길게는 8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마음 속 깊이 꼭꼭 숨겨두었던 고통과 자기혐오,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언어로 표현되고 있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동료교사를 성추행하고 성희롱 했던 가해자들은 일말의 가책도 없이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구성원들은 침묵했다. 이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전히 잘 살고 있다. 여성들은 입을 모아 '학교에서 성희롱을 겪지 않은 여성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학교는 성적 사회화의 장소이다학교는 남자는 남자답도록, 여자는 여자답도록 키워내는 성적 사회화의 주된 공간이다. 가정에서의 노력을 무력화시킨다.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학생들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로 나눠진다. 생물학적인 성별 이분법이 사람의 의식과 태도, 가치로 확장되며 이를 자연의 섭리로 가르치며 의심의 여지를 삭제한다.
분홍색과 파란색으로 대표되는 장난감, 문구, 공주와 왕자 이야기가 담긴 동화책,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들로 구성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교육과정 안에서 당연한 것으로 전제되고 있다. 성별에 따라 장려되는 태도가 정해져 있고 이를 잘 수행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로 주어진다. 교사 역시 당연의 세계에 의심을 품을 계기가 없다. 성별이분법은 여학생들을 주변화시킨다.
성을 단속하고 통제하는 것도 학교에서부터 시작된다. 현재의 성교육은 성을 성행위로 축소하면서 남녀의 연애, 결혼, 출산과 연결시키고 있다. 또한 성은 개별 남성과 개별 여성의 개인적 관계이기에 당사자들이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데 성폭력은 개인의 일탈이며 가해자/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한다. 학생들의 이성교제는 불온하고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서 규제를 한다.
여학생에게 성은 더욱 더 복잡하다. 학교 사회는 걸그룹의 댄스를 커버하는 여학생들에게 열광하지만 열광의 핵심은 그녀들의 댄스 역량이 아니라 성적 대상화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축제라는 한정된 장소에서만 이러한 행위가 허용된다. 화장도 짧은 치마도 허용되는 장소와 그렇지 않은 장소가 구분된다. 여학생들의 섹슈얼리티는 이렇게 소비된다.
학교는 학생들의 몸을 통제한다. 여학생들은 남학생보다 더 강하게 두발, 교복, 악세사리, 신발까지 학교생활규정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를 받는다. 어떤 학교에선 하얀 색 속옷을 입어야 하고 발목 양말을 신어서는 안 된다. '야하기 때문'이란다.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지만 성폭력이 발생하는 권력관계는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라는 교육은 여성을 피해자화하고 피해의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며 공론화를 어렵게 하고 오랜 시간 자기혐오 속에 고통을 받게 한다.
페미니즘을 통해 우리는 교육이 성적 사회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성별이분법과 남성중심주의가 아닌 모든 존재의 평등과 존엄을 실현하는 교육을 모색하고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준다.
학교 문화를 성평등 민주주의로 전환해야 한다학교는 교육하는 자와 교육받는 자의 위계가 확실하다. 교사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는 전근대적 의식이 여전히 강고하며 구성원 간의 위계는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예의와 예절의 문제가 된다. 정당한 목소리는 버르장머리 없음으로 인식된다.
교장들은 'OO학교 교육 가족'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민주적 소통과 리더쉽이 부재한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를 통제하는 방식은 가부장적이다. 교장은 아버지이고 여성들은 '딸'로 규정되면서 성희롱, 성폭력은 자식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명명된다. 교장과 교사, 교장과 학생 교감을 '윗분' '어른'인 구조에서 성평등은 요원하다.
중요한 보직의 1순위는 남성, 만일 남성이 없을 경우 자신을 잘 보좌할 수 있는 여성 교사들이다. 교장, 교감이 되기 위해서는 앞선 교장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좋은 점수를 얻어야 한다. 교장의 성추행을 보고도 못 본 척 해야 한다. 침묵의 동조자가 되어야 승진이 가능하다.
학교 밖의 조직은 대표를 선출하기도 하지만 교직 사회에서 구성원의 합의에 의해 교장이 선출되고 임기를 마친 후 다시 평교사로 돌아오는(교장선출보직제) 경우는 거의 없다. 경력과 점수로 교장이 되는 현재의 학교 구조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교장이 무한한 권력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자녀를 맡긴 여성 학부모, 위계의 맨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는 여성교사들은 성추행, 성희롱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 여학생들은 연령과 성별이라는 이중의 차별 구조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으며 가장 심각한 폭력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