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해고승무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 요구 기자회견을 앞두고 있다.
이희훈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시도했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사법농단을 향한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여전히 해당 문건을 공개하지 않고 있고, 관련자 형사 조치에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또, 지난 조사결과 발표 당시 재판 과정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인 대법관들은 '재판 거래' 문건에는 침묵하고 있다.
사건의 진화 : 사법부 블랙리스트 → 사법농단 재판거래
법원은 지난해 3월 사법부 블랙리스트 문제로 내부 조사를 시작했다. 양승태 대법원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이었던 이탄희 판사를 발령한 지 11일 만에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그러자 법원 내부에선 행정처가 이 판사가 소속된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를 하지 못하게 지시했음에도 이에 응하지 않자 인사조치를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를 꾸렸고, 진상조사위는 한 달 뒤 "보복성 인사조치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이 판사가 '판사 뒷조사 파일'의 존재를 주장하면서 문제는 다시 불거졌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 지난해 11월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당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출범시켰고, 추가조사위는 내부 문서를 조사했다. 그 결과 판사 인사개입 문건뿐 아니라 양승태 대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댓글 법원의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을 거래하려고 시도한 정황들이 드러났다.
그러나 관련자들이 비밀번호를 열어주지 않는 등 자세한 확인이 불가능했고, 결국 3차 조사(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로 이어졌다.
3차 조사 결과 발표는 충격적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이 개입을 시도한 건 원세훈 전 원장 사건만이 아니었다. KTX 승무원 해고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 박근혜 정부의 관심 사건 재판 결과를 사법부 숙원 사업과 맞바꾸려 했다. 선고 시점과 결과를 두고 "국정 운영의 동반자·파트너", "윈윈" 같은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했다.
대법원이 해당 사건 피해자의 간절함을 외면한 채 판결을 흥정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특정 성향을 가진 판사를 주요 보직에서 제외하는 등 법원 내부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사법농단'이었다.
여론 따라 달라지는 법원 입장... 처벌 없는 대책은 무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