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6일, 상영관 축소 논란을 빚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된 서울 구로 CGV에서 영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를 당시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이 안내하고 있다.
유성호
1986년 인천지역 노동자연맹에 소속되어 인천 주안6공단 동방상사라는 벽시계 공장에 위장 취업해 일하다가 5.3 인천항쟁을 앞두고 국정원에 검거됐습니다. 남산 지하실에 끌려갔습니다. 한 달 동안 남산지하실에서 고초를 겪고 나서 저는 사상적으로 무장해제된 채 낙담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회찬 형을 만났습니다.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을 만들면서 한국사회 식민지 반봉건 사회론에 대한 사회 구성체 논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주대환, 노회찬, 이경재, 이원주 등 많은 분들과 토론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회찬 형은 이념과 이론을 넘어서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형이었습니다. 국정원에서 몸과 마음이 해체된 저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선창산업 노동자로 위장취업하면서 다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친구 이정우 변호사가 마련해준 돈으로 인천 송림동에 만화 가게를 차리면서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하여 노동자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 남영신을 불러 같이 동거하게 되었습니다. 회찬 형, 형수(김지선씨)와 부부간에 친하게 지냈습니다.
회찬 형이 운수노동운동을 맡아달라고 제안해서 박형규 목사님의 아들 박종열 목사, 이원주 선배와 함께 인천기독교 민중교육연구소를 만들고 그 안에 운수노동상담실을 설치해 운수노보를 발행하면서 택시, 버스, 화물 노동자운동을 조직하였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상호활동보고를 하고 제 자취방에 들러 소주 한 잔할 때도 많았습니다.
항상 열린 자세로 저의 고민을 함께 들어주고 존중해주었던 형은 제가 1991년 노동운동에 회의를 느껴 소련, 동구권을 돌아보고 와서 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글도 잘 읽어주고 일부 공감을 표시해주었습니다. 사법 시험공부를 위해 인천 지역 노동현장을 떠날 때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후 정치활동을 하면서 회찬 형을 볼 때마다 죽산 조봉암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6.25가 막 끝난 상황에서 북진 통일론이 한창일 때 평화통일을 주장하고 진보정치를 주장했던 죽산 조봉암의 꿋꿋한 진보정치에 대한 신념을 회찬 형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그 유명한 "불판을 갈아보자"는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