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보이스피싱 현금인출책이 검거된 광주은행 C지점.
소중한
번호표를 손에 쥔 채 의자에 앉아 있는 고객, 이들을 마주하는 친절한 미소의 은행원.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은행의 모습이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지만, 사실 은행은 '보이스피싱 전쟁터'이기도 하다. 돈을 빼앗으려는 자와 돈을 지키려는 자의 싸움. 그 결과 은행원들이 2018년 상반기 중 지켜낸 금액은 총 558억 원에 달했다(금융감독원 집계).
지난 6월 25일 오후 광주은행 A지점. 근처에 살며 A지점에 자주 들렀던 김아무개(46·여)씨가 B계장이 담당하는 창구에서 2000만 원 인출을 요청했다.
2시간 전 김씨가 "남편 사업의 세금 납부를 위해" 옆 창구에서 1600만 원을 인출한 것을 본 B계장은 즉각 수상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자주 보던 고객이었지만 이번엔 "친척에게 빌려줄 돈"이라며 또 고액 인출을 원하자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은행 전산 시스템에도 연속된 고액 인출 시도를 경고하는 문구가 떴다.
B계장은 김씨에게 인출 목적 등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시간을 끈 뒤, 본점에 연락해 보이스피싱이 의심된다고 보고했다. 본점도 곧장 광주 북부경찰서에 사건을 신고했다.
은행원은 왜 컴퓨터를 꺼버렸을까
하지만 인출이 지연되자 김씨는 A지점을 떠나버렸다. 김씨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A지점에서 약 3km 떨어진 C지점. A지점을 떠난 후 약 1시간 만에 C지점의 D대리 창구 앞에 선 김씨는 "동생이 집을 사는 데 현금이 부족해 빌려줘야 한다"며 또다시 2000만 원 인출을 요구했다.
김씨의 통장 내역을 검색해 본 D대리는 앞서 A지점에서의 이력을 보고 곧장 보이스피싱을 의심했다. 일부러 컴퓨터를 끈 D대리는 김씨에게 "전산 시스템이 다운돼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하며 시간을 끌었다. 옆자리로 간 D대리는 본점에 상황을 보고했고, 본점은 앞서 A지점에서 벌어진 일을 D대리에게 설명하며 "경찰이 출동했으니 조금만 더 시간을 끌어달라"고 지시했다
D대리는 "전산 시스템이 정상화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 "고액을 찾으려면 몇 가지 확인이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하며 김씨를 객장에 붙들었다. 잠시 후 광주 북부경찰서 지능팀이 현장에 출동해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인출책이었던 김씨를 검거했다.
D대리는 17일 기자와 만난자리에서 "자주 (보이스피싱 관련) 교육을 받아왔지만 막상 제 앞에서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라며 "경찰에 끌려가면서 저를 쳐다보는 (김씨의)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며칠 동안 퇴근하면서 주변을 살피게 되더라"라고 떠올렸다.
이어 "다른 직원이었어도 모두 저 같이 행동했을 것이고, 또한 은행일은 협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혼자서 할 수 있었던 일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A지점 직원, 본점 직원, 옆자리 직원, 경찰 등의 상호작용으로 보이스피싱 사범을 검거할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두 달 만에 2억 4천만원 '쓱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