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원이 당선인.
권우성
- 그 꿈이 뭔가.
"지방 분권이다. 지방 도시들은 지금 소멸 위기다. 청년이 없다. 서울이 지방의 인재들과 자본, 문화를 다 빨아들이면서 어마어마한 국제 도시로 급성장했지만 그 대가로 지방이 암울해졌다. 여기서 차별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보자. 청년수당이 제일 먼저 도입된 곳이 어딘가? 서울과 경기도다. 돈 있는 도시들이니까 가능한 거다. 지방은 주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준다. 그걸 지켜보는 지방청년들의 마음은 어땠겠나. 이게 차별 아니고 뭔가.
그래서 생각한 게 지방분권법이다. 지방 정부에 대한 예산을 늘리고, 지방의 예산 편성 자율성과 유연성을 보장해줘야 한다. 현재 지방의 재정은 중앙 정부의 도움 없이는 운영이 힘든 상태다. 세금이 얼마 안 걷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앙 정부의 교부금엔 다 꼬리표가 붙어 내려온다. 항목이 다 정해져 있다. 유연성이 없고, 지방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도 좁다. 또 국비와 지방비를 7:3이니 6:4니, 매칭으로 하는 경우도 많아 재정의 독립성이나 자율성이 약하다. 이 문제를 풀어줘야 지방마다 각자의 특성에 맞게 예산을 쓰면서 성장해갈 수 있다.
또 하나는 지방청년 지원특별법이다. 결국 지방이 지속가능 하려면 청년들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모두가 '인(in) 서울'을 외치며 올라가버리고 있다. 경기도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지방이 더 이상 수도권에 청년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청년들의 사회 진출을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청년들이 지역에서 창업을 하거나 취업을 하면 지원금뿐만 아니라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도 함께 제공하며 도와야 한다. 현재로선 격차가 너무 크다. 지방청년을 고용하는 기업들에게도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 지난 2018년 청와대에서 발의했다가 불발된 개헌안의 핵심 내용 중 하나가 지방 분권이었다. 앞으로 지방 분권 개헌의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개헌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겠나. 다만 누가, 언제, 어떻게 개헌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 지금 상황에서 각자가 개헌에 대해 백가쟁명(百家爭鳴, 여러 사람이 자기 주장을 내세움)식으로 언론에 얘기하는 건 맞지 않는 것 같다. 개헌은 워낙 큰 사안인 만큼 당 지도부가 의견 수렴과 조정을 거쳐 입장을 밝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렇게 중론이 정해지면 모두가 잘 따라줘야 한다."
- 당장은 아니지만 대선이 있는 2년 뒤엔 개헌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올 거란 예상이 많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지 않겠나. 개헌은 최종적으로 국민 투표가 필요한 사안인데 대선 외에 언제 따로 할 수 있겠나."
"박원순 사람? 맞다, '호남 대통령론' 있긴 하지만..."
- 김대중·김근태·박원순 등 거물 정치인들의 보좌진으로 일하면서 뭘 배웠나.
"김대중 대통령 말씀 중엔 두 가지가 가슴에 남아 있다. 하나는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학생 운동을 할 땐 줄곧 군부 독재 타도를 외쳤다. 자연스럽게 민주 정부를 수립한 다음엔 뭘 해야 하냐는 물음이 나왔다. 요즘 표현으로는 '나라다운 나라'일 거고, 당시엔 '평등한 세상'이었다. 그걸 위한 수단이 정치만한 게 없지 않나. 사회 구조와 제도, 시스템을 만드는 게 정치니까. 또 하나는 그 방법론으로서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을 갖추라'는 말씀이다. 평등한 세상이라는 이상을 실현해내기 위해 정치 현실에선 상인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씀이다.
김근태 의장에게선 민주주의를 배웠다. 그분은 늘 '따뜻한 시장경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패자부활이 가능한 사회'를 입에 달고 다니던 민주주의자셨다. 김 의장을 모시던 2000년대 중반은 특히나 우리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의 횡포가 가장 심각했을 때다. 비정규직 비율이 50%를 넘었고 틈만 나면 노동유연성이 강조되면서 회사에서 잘리고, '빅딜'이라며 기업들이 합쳐졌다. IMF가 요구한 것을 지나치게 이행하면서 폐해가 극에 달했다. 그때 김 의장은 노사정이 모두 함께 하는 사회적 합의 뉴딜을 제안하셨다. 여기서의 뉴딜은 요즘 말하는 '한국판 뉴딜'과는 전혀 다르다. 요즘의 뉴딜이 SOC 투자 개념이라면, 당시 김 의장이 말씀한 뉴딜은 사회적 합의였다. 예를 들면 재벌들의 숙원인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대신 노동의 안정성도 유지하도록 협약하고, 이를 시민사회와 정부가 함께 보장하자는 거였다. 내가 정치를 한다면 이어서 해야겠다고 싶었다. 김 의장님한테는 제가 최고의 아부꾼이었다(웃음). 저만 보면 웃고 좋아하셨고.
박원순 시장은 시민들의 참여와 소통을 이끌어내고 협치와 조정 능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선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본다."
- 본인은 '박원순계'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박원순 사람 맞다. 다만 제가 여러분을 모시지 않았나. 김대중 대통령을 모실 땐 김대중의 남자였고, 김근태 의장을 모실 땐 김근태의 남자였고, 박원순 시장을 모실 땐 박원순의 남자였다. 문재인 정부의 유은혜 교육부총리 보좌관 땐 유은혜의 사람이었다. 근데 이들의 공통점은 다 민주당 사람들이라는 거다. 저는 민주당의 남자다. 이제는 목포의 남자이고 싶다."
- 이번 총선에서 박원순계로 불리는 초선 허영(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갑)·천준호(서울 강북갑)·민병덕(경기 안양동안갑)·박상혁(경기 김포을)·윤준병(전북 정읍고창)·최종윤(경기 하남) 등이 대거 국회에 진출해 박 시장의 향후 대권 도전에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는 평가가 있다. (관련 기사 : 여당 압승한 총선, '친 박원순계' 두 자릿수에 승률 90% 이상, / 4년 전 공천 불이익 '친 박원순', 21대 총선에선 약진?)
"아직 대권 얘기를 하기는 이른 것 같다. 근데 이번 결과로 하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고 본다. 박원순 시장이 사람을 잘 고르고 잘 쓴다는 거다. 유권자들이 이들을 '박원순계'라서 찍어줬겠나? 아니지 않나. 박 시장이 발탁했던 이들이 실제로 능력과 실력이 있었다는 걸 이번 선거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사실 2017년 대선 전까지만 해도 박 시장의 서울시는 박근혜 정부 치하에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야당(민주당)에서 서울시만큼 일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고 보면 된다. 서울은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국방을 제외한 모든 종합 행정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기부터 박 시장의 선택을 받아 시정을 도왔던 인사들이 대거 문재인 정부 청와대로 갔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해 조현옥 전 인사수석, 하승창 전 사회혁신수석 등이 그들이다. 그런 점에서 박 시장이 여권에서 좋은 역할을 했다.
저를 비롯해 이번에 당선된 분들이 박 시장 덕분에 서울 시정을 함께 할 수 있었던 만큼, 박 시장이 어떤 뜻을 품으면 관심을 갖고 응원할 가능성이 당연히 높지 않겠나. 하지만 현재로선 대권에 대한 얘기는 너무 나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