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다주택자 겨냥한 부동산 대책 발표정부가 다주택자를 겨냥한 과세로 부동산 가격 안정화에 나선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잠실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복잡한 생각을 지우고 못난 감정들을 비우고 싶어 휴가를 내 떠났다. 따뜻한 날씨와 편안한 숙소가 기분을 한결 좋게 해주었고 낯선 환경들이 잠시나마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여행이 좋아지면 질수록 '아파트만 있었으면 더 여행도 많이 다니고 더욱더 행복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패키지처럼 따라다녔다. 나도 모르게 자꾸 이어지는 이런 생각이 너무 괴롭고 못나서 남편에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아파트는 여행 내내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여행 중간쯤 남편과 아이가 낮잠을 자는 동안 유튜브를 우연히 검색하다가 신년특집으로 기획된 <PD수첩> '우리가 아파트를 살 수 없는 이유, 집 있는 사람들의 나라'를 보게 되었다. 최근 서울 강남 아파트가 뉴욕 맨해튼보다 평당 가격이 비싸졌단다. 강남의 일부 아파트는 평당 1억이라 24평이면 24억이라고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현상은 불과 5년 사이에 일어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부자가 되었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가지 시선으로 분석해주면서 온 국민이 아파트라는 광기 어린 도박에 빠져있는 상황을 보여주었다.
지금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불안전하고 투기성 가득한 상황이라 분석하였다. 온 종일 거리에서 고된 배달 일을 하는 사람은 원룸에 살면서 아파트만 보면 자신의 처지를 비웃는 무시무시한 괴물 같이 보인다고 말했다. 홀린 듯이 영상을 모두 보고 아이팟을 챙겨 공원으로 나왔다. 아름다운 노을이 지는 호수 곁을 씩씩거리면서 걸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알 수없는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한 한바탕의 눈물을 쏟고 난 뒤 갑자기 웃음이 났다.
'아, 내가 못나고 이상한 게 아니라 나라가 미쳤구나. 내가 미친 나라에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야릇한 마음으로 산책을 하고 숙소로 들어가니 남편과 아이가 깨 바다에 갈 채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오후 노을 지는 해변 일렁이는 바닷속에서 오랜만에 모든 것을 잊고 아이와 신나게 놀았다.
꿈같은 짧은 휴가를 마치고 다시 일상, 일전에 만났던 대학 동기가 카톡을 보내왔다. "대박 로또 분양 3곳. 총알 모으다가 거지 된다. 무조건 아파트다." 피식 웃음이 났다. 좋은 정보 줘서 고맙다고 전하고 알려준 로또 분양 3곳을 저장해두었다. 친구에게 내가 잊어버릴 수 있으니 분양 기간에 다시 알려달라고 부탁하자 담청되면 한턱이 아니라 백턱을 쏴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런데 집도 있고 직업도 있는 사람이 왜 이렇게 아파트에 관심이 많냐고 물으니 본격적으로 갭투자를 시작할 거라 말한다.
몇 년 동안 공예를 취미로 시작해 또 다른 꿈까지 키웠던 그녀였다. 아파트 말고 공예작업에 관해 물으니 아파트만 24시간 생각하고 분석해야 성공한다며 다른 곳에 신경 쓸 수 없단다. 그 말 뒤에 친구는 아파트 갭투자로 많은 돈을 벌어 평생 봉사하고 살 거라 야무지게 덧붙인다.
우리는 아파트가 연봉을 벌어주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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