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용기도 설거지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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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마시다 친구의 행동에 잠시 '뜨악'했다. 조금 전 우리가 배달해 먹은 짜장면, 짬뽕이 담겨 있던 일회용 용기를 세제까지 풀어 깨끗이 설거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일회용 용기를 왜 씻어?" 나는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얘는 원래 이렇게 씻어서 버리더라고"라고 대신 답변을 해줬다. 정작 당사자인 친구는 묵묵히 일회용기와 더불어 그릇들을 설거지할 뿐 대답이 없었다.
당시는 재활용 용기들은 그냥 배출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그 친구의 깔끔한 성향도 한몫 했겠지만, 재활용품을 수거하시는 청소노동자를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음식찌꺼기와 오물이 뒤덮인 일회용품을 수거하는 타인의 손을 배려했던 것이다. 그렇게 원래 하던 행동이 '습관'이 된 친구였다.
이 상황은 10년 전 일이다. 그리고 나는 재활용품을 분리 배출할 때 깨끗이 씻거나 헹궈서 내놔야 한다는 것을, 그로부터 5년 후쯤에야 알았다. 또한, 타인의 손을 배려하고자 했던 그 친구의 습관이 옳은 행동이었다는 것도 함께 알게 되었다.
쓰레기봉투 몰빵 하던 나, 이젠 달라졌다
하지만 분리배출 요령을 안다고 해도 이를 실제 생활에서 실천에 옮기기란 쉽지 않았다. 그 친구처럼 습관을 익혔던 것도 아니었고 그 당시 나는 워킹맘이기도 했다. 변명을 하자면, 대한민국 워킹맘은 가사와 직장일에 육아까지 병행해야 했으므로 재활용 따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재활용은 그저 다른 쓰레기들과 같은 쓰레기일 뿐이었으니까.
시간이 나면서 페트병이나 유리병 정도는 분리배출 했지만, 나머진 20리터 쓰레기봉투에 '몰빵' 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직장을 그만두고 '집사람'으로 생활하면서부터 조금씩 재활용 분리수거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이 한 가지 일에 몰두를 하면 보이지 않던 부분도 세세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 경우엔 분리수거가 그랬다.
처음엔 비닐류, 페트병, 유리병, 캔, 종이류 등 큰 단위로 분리배출을 시작했다. 비닐류는 과자봉지든 포장지든 무조건 비닐 종류에 버리고, 종이류는 우유팩뿐만 아니라 코팅된 포장지부터 쓰고 버린 휴지까지 몽땅 같은 분류함에 넣었다. 그러다 모든 종이가 다 '재'활용이 될 수 없다는 불편한 사실을 알게 됐다.
열심히 분류하던 비닐류는 우리나라에선 재활용이 되지 않고 대부분 소각된다고 했다. 코팅된 종이는 일반쓰레기이고, 플라스틱에 부착된 라벨의 띠지는 생각보다 쉽게 떼어지지 않아 대부분 그냥 통째로 버려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일회용 비닐은 아무리 깨끗이 헹구어 분리수거를 하더라도 이미 한번 사용되어 쉽게 오염되므로 재활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페트병 또한 라벨지를 떼어낸 후 버려야 하고, 그나마 유색보다는 투명한 무색 페트병이 재활용률이 더 높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페트병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정작 '고품질 원료'로 사용해야 하는 재활용 페트병은 일본에서 수입해 온다고 한다. 우리는 돈 주고 옆 나라의 쓰레기를 사 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니 더 꼼꼼히 분리배출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재활용 분류는 점점 '나노 단위'처럼 이뤄졌다. 기준이 가장 모호한 건 비닐류였다. 때문에 비닐류는 조금만 사용의 흔적이 있어도 종량제 봉투로 들어갔다. 또한 모든 일회용 용기는 우리 집 식기 못지않게 깨끗이 씻어 배출해야 마음이 편했다. 페트병뿐 아니라 플라스틱 용기도 안에 남은 내용물을 깨끗이 씻고 라벨지를 떼어낸 후 말려서 배출했다.
모든 재활용품들이 목욕재계 후 새 삶을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엄마의 행동과 지침에 따라 아이들도 처음엔 분리수거를 힘들어하며 어디까지가 쓰레기이고 어디까지가 재활용인지 구분하기 어려워했다. 지금도 적응 단계이지만,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겨 우유팩이든 음료수병이든 용기에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면 무조건 헹구거나 씻어서 배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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