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26일 서울시의 청사 일부 해체 복원 방침에 대해 문화유산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가 태평홀을 중장비를 동원해 해체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2008년 8월, 서울시민들은 믿기 힘든 뉴스를 접했다. 서울시장이 문화재 등록을 몇 시간 앞둔 서울 구시청사를 새벽에 몰래 철거한 것이다. 문화재로 등록되면 더 이상 철거가 힘들기 때문에 오세훈 당시 시장은 야음을 틈타 철거를 단행했다. 재개발 철거지역에서 폭력적인 철거반들이나 하는 일을 서울특별시 시장이 나서서 한 것이다. 그 장면은 작지 않은 충격이었다.
오세훈 전 시장은 임기 내 "디자인 서울" 정책과 무리한 뉴타운을 추진하면서 서울의 특색 있는 장소들이 급속도로 사라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서울시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것은 서민들의 역사가 담긴 피맛골을 철거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스포츠 시설이자 고교 야구대회, 축구대회 등이 열렸던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한 점이다. 오세훈 전 시장은 이 장소들을 서울시민 공동의 역사가 아니라 낙후된 시설 정도로 취급했다.
"도시는 변화한다. 그러나 도시의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현재는 고인이 된 건축가 이종호 선생이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 설계와 건설 과정에 대해서 필자와 인터뷰하면서 한 말이다. 도시에서 변화는 자연스럽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의 삶을 망쳐가면서, 도시 기능을 헤쳐 가면서, 도시의 기억을 삭제하는 방식의 개발도 답은 아니라고 얘기했다.
오세훈 전 시장은 '2010 세계 디자인 수도(WDC) 서울' 주요 사업의 하나로 DDP를 계획했고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는 설계하는 동안 현장에 와 본 적도 없거니와 동대문 지역의 옷 도소매 상권이나 동대문운동장의 역사, 그 안에서 일했던 상인들과 노점상인들의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기 어려웠고, 결국 맥락과 상관없는 건축물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결국 그 선택은 서울시민들이 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공통의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부동산 욕망밖에 남은 것이 없다고 말이다. 세계적인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원래 도시 맥락보다는 상징적 형태를 만드는 건축가이다. 서민들이 살아온 흔적은 "낡은 과거"로만 해석하는 오 전 시장에게 "새로운 서울"을 디자인할 사람은 맥락보다 형태를 중시하는 디자이너 자하 하디드가 알맞았을 것이다.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되면서 가장 슬펐던 것은 거대 건축물을 앞세운 정치적 욕심, 뉴타운 광풍과 부동산 열기가 너무 당연시되다 보니 보통 사람들의 기억도 역사이고, 보통 건물도 공공의 기억이 담긴 곳은 보존하고 재해석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시 역사의 삭제라는 문제 외에도 동대문운동장에는 여러 문제가 있었다. 첫째, 동대문운동장은 잠실 올림픽 경기장 건설 이전까지 서울에서 가장 큰 운동 시설로써 아마추어 스포츠의 즐거움을 제공하던 장소였다. 차범근 선수는 여기에 많은 추억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둘째, 이명박 전 시장이 청계천 복원 시 내쫓았던 노점상인들을 억지로 동대문운동장 주차장 자리에 이주시켰는데 몇 년 지나지 않아 또다시 내쫓기게 되었다.
막상 건물을 철거하고 노점상인들을 다시 한번 내쫓은 후 철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 밑에서 엄청난 규모의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하도 감 터와 우물터, 기와 꽃길 등이 발견되었다. 국보급의 매장 문화제는 원형을 지켜야 하지만 현재 그 유물들은 철거되어 어설프게 동대문 디자인파크 앞마당에 일부만 이전되어 있다.
다시 뉴타운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발상은 반역사적
혹자는 묻는다. 재개발이 왜 나쁘냐고 말이다. 재개발 자체는 당연히 나쁘지 않다. 재개발이나 뉴타운 사업은 "공공사업"으로 원래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새 건축물은 너무 비싸 원 집주인들이 받은 보상금으로는 재입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대부분의 세입자는 임대 주택은커녕 이사비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철거 용역반에 쫓겨나기 일쑤였다.
재개발 사업은 우리나라에서 1960년대 말에 처음 시작했지만 뉴타운은 2003년 이명박 전 시장이 제안해서 특별법으로 만들어진 정책이다. 서울 뉴타운 1호인 길음 뉴타운 예를 들어보면, 평당 분양가가 1400만 원이었다가 현재는 평당 4000만 원을 웃돌게 되었다.
서울시민들은 이런 "부동산 대박"이 나에게도 생길 것만 같은 기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길음 뉴타운에서 실제 원주민이 재정착한 비율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또 오히려 2005년에 비해 2015년의 주택 소유주 비율은 늘지 않고 2%가량 줄어들었다. 집 공급이 늘었지만 원래 집 한 채 있던 사람들이 하나 더 산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시 주택 재개발사업 추진실적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에서 2003년부터 2019년까지 재개발로 공급한 주택 수가 16만 6000호이고, 원래 그 지역에 있다 철거된 주택이 6만 호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새로 공급한 주택은 10만 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들은 당과 정체성을 떠나 모두 5년 안에 16년간 지었던 주택보다 적게는 3배에서 많게는 7배를 더 짓겠다는 공약을 다투듯 내놓았다.
박영선 후보는 30만 호, 안철수 후보는 74만 호, 오세훈 후보는 36만 호를 5년 안에 짓겠다고 하니 이런 허세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다. 대체 그 많은 집을 어디에 무슨 돈으로 지을 것인지 대책이 있기는 한 것일까? 저렇게 많은 물량을 공급하려면 당장 남은 곳은 첫째로 공원 등 공공녹지, 둘째는 서울에서 제조와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문래, 영등포, 을지로, 구로, 동대문 같은 곳을 철거하려 할 것이다.
엄청난 액수의 세금이 부동산 토지 구입비, 건설비에 투자되어 코로나로 회복이 필요한 시점에서 공공 교육, 공공 복지 및 의료, 소상공인 지원은 뒷전이 될 것이 뻔하다. 서울시민은 부동산 투기만 부추기는 위험천만한 시장이 아니라 서울시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곳, 생산하고 일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시장이 필요하다.
2009년 1월 용산참사는 큰 충격을 주었다. 이명박 정권과 오세훈 시장의 무리한 뉴타운 추진이 기어코 사람을 죽인 것이다. 시민사회는 강제퇴거 금지법을 추진하고 장관이 된 변창흠 교수, 조명래 교수를 비롯한 지식인들도 재개발의 공익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 후 국가 차원에서는 공급자 중심의 재개발이 아니라 도시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주민 중심이 되는 도시 재생 정책을 추진했고 2013년에는 도시재생 특별법이 개정되었다. 2017년 문재인 정부도 도시재생 뉴딜을 발표하며 주민 중심의 도시 재생을 하겠다고 공표했다.
무리하게 지정한 뉴타운 사업은 조합이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진퇴양난에 빠지자 서울시는 뉴타운 출구 사업을 시작했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서울 도심을 재생하기 위해 역사도심 조례를 발표하고 사대문 안의 층고를 90m로 제한했다. 그러나 도시 재생의 성과는 더디게 나타났고 상가 내몰림 현상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기에도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10년 넘는 시민 사회와 서울 행정의 노력을 0으로 만들고 다시 뉴타운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발상은 반역사적이다.
공급자가 아니라 사용자가 주인인 도시가 되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