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이 지난달 31일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호소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남소연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의 70% 수준인 현 상태에서 30%만 더 있으면 집을 살 수 있다. 신용보강이 이뤄지면 전세를 살고 있는 사람 상당수가 매매로 전환할 수 있다." (2014년 7월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
"청년과 신혼세대가 안심대출을 받아 내 집을 장만하고 그 빚을 갚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50년 만기 모기지 대출 국가보증제'를 추진하겠습니다." (2021년 3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빚 내서 집 사라' 시즌2가 시작됐습니다. 부동산 정책 실패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궁지에 몰린 여당이 대출규제 완화 카드를 꺼냈습니다. 잡으라는 집값은 못 잡고, 이젠 대출을 더 받아 집을 사게 해주겠다는 겁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빚 내서 집사라'고 했던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를 매섭게 비판했던 여당이 이제 그 정책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1일 대국민호소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정책 실패에 사과하면서 '내 집 마련 국가책임제' 도입 계획을 밝혔습니다.
처음 내 집 마련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정부가 지원하는 정책 주택담보대출 상품의 적용 대상을 넓히고 저리로 50년 초장기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겁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 규제를 풀어 좀 더 많은 돈을 대출받을 수 있게끔 하겠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주택대출의 경우, 대출 기간은 최장 30년인데 대출 기간을 50년으로 늘리면, 월 상환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위험한 빚 잔치 권하는 집권여당
그런데 가계부채를 줄이고 대출 부담을 가볍게 하려면 집값을 낮추는 게 답일까요? 아니면 대출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주는 게 답일까요?
부동산, 특히 아파트 가격은 하방경직성이 강합니다. '가격이 잘 떨어지지 않는 성격'이 강하다는 얘기입니다. 왜 그럴까요? 한국은 부동산 자산 비중이 높은 나라입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공동으로 조사한 '2019 국민대차대조표'에 따르면, 국민순자산(비금융자산)에서 합산 부동산(건물+토지)이 차지하는 비중은 76.1%였습니다. 국민 자산 중 부동산 자산 비중이 높고, 서민들의 경우 집 한 채가 사실상 전 재산이니, 가격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성향을 보이는 것이죠. 전 재산인 집을 자신이 산 가격보다 낮게 내놓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지금 대출 규제를 풀어서 서민들에게 집을 사게 한다면, 늘어나는 수요로 현재 수준의 집값은 견고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만에 하나 집값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정부를 믿고 집을 샀던 서민들만 빚더미에 허덕여 고통을 겪게 됩니다. 집값이 오르든, 떨어지든 대출규제 완화는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출 기간 늘려주면 빚 상환 부담은 덜할까요? 현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0억원 정도라고 하니, 그 가격대의 아파트를 산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아파트를 살 때 7억원(LTV 70% 적용)의 대출을 받아 50년간 상환하면 한 달에 갚아야 할 돈은 얼마일까요? 현재 정부 디딤돌대출의 평균 금리 수준인 2%만 적용해도 184만6534원(원리금균등상환 시)이 나옵니다.
지난 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 통계에 따르면, 임금근로자의 2019년 월 평균 소득(세금 부과 이전)은 309만원입니다. 즉 평균 수준의 임금을 받는 근로자라면 월급의 60% 가량을 빚 갚는 데 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약 신혼부부라면 육아는 커녕 두 명이서 먹고 살기도 어려울 겁니다. 이렇게 무려 50년을 살아야 합니다. 만약 집값이 떨어진다면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이 가장 큰 타격을 볼 겁니다. 아파트를 비싸게 팔았던 건설업계와 다주택자들은 이득이겠네요.
2030 패닉바잉 되살아날라
지금 민심의 분노는 '대출 규제' 때문이 아닙니다. 임대사업을 등록한 다주택자들에게 종합부동산세 면제 등 각종 특혜를 몰아주면서 주택 투기를 활성화시키고,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핑계로 주택도시보증공사 규정을 바꿔 건설·토건업계의 요구 사항인 '고분양가 책정'을 가능하게 해주고, 핀셋 정책으로 투기꾼들이 여기저기 들쑤시게 해주면서도 정작 LH 등 내부 비리는 까마득하게 몰랐던 문재인 정부의 실패와 무능력에 분노하는 것입니다.
당장 선거가 급하다고 과거 야당 시절 자신들이 혹독하게 비판했던 '빚 내서 집 사라'는 정책으로는 서민들의 화를 잠재우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건설업계와 다주택자들의 배를 불리며 가계부채 상승으로 인한 부작용만 낳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정책의 일관성이 훼손되고 부동산 시장에 혼선이 커지면, 잠시 주춤한 2030세대의 패닉바잉(공포 구매)이 되살아 날 수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기재부 관료 출신인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이 1일 "선거를 앞두고 다양한 제안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지금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했을까요. 청와대의 경고를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해 시장 안정에도 실패하고 선거까지 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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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내서 집 사라' 시즌2? 집권여당의 위험한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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