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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서울 아파트 살이의 진면목

[기사 공모] 독박육아에 허덕이던 나를 구원해준 이웃들

등록 2021.04.11 14:29수정 2021.04.1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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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는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을 도보로 20분 내에 도착할 수 있다. 사계절 내내 제 집 앞마당처럼 뒷산을 타고 현충원을 수시로 드나들며 산책을 한다. 먼지 없이 깨끗한 날, 현충원 장군 묘역에 올라 보는 한강변의 풍경은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갈 정도로 거침없이 시원하다. 


"이런 멋진 공원을 무료로 매일같이 누릴 수 있으니 우리 동네가 정말 좋긴 좋아, 그렇지?"
 
    동네 뒷산 정경
동네 뒷산 정경이지애
 
이웃들과 함께 산책할 때면 늘 하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우리 동네를 진짜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오랜 세월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정든 이웃들이 바로 그 이유이다.

이 동네에 자리를 잡은 건 복도식 아파트 소형 평수에 신접 살림을 차리면서이다. 아파트에 사는 서울 사람들은 이웃들과 인사도 안 하고 지낸다는 말을 익히 듣던 터라 이웃들과 잘 지내려고 딱히 애쓰지 않았다. 그저 남편과 나만 알콩달콩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이 잠시 외국으로 떠나면서 난데없이 독박 육아가 시작되었다. 내가 겪은 서울 아파트 살이의 진면목은 그때부터였다. 

눈코 뜰 새 없이 시종일관 동동거렸다. 아이들의 호흡기는 왜 그리 약했는지 자주 아팠다. 면역력을 높이려고 아로마 오일 훈증을 하고, 느릅나무 껍질을 다려 먹이고, 책 보고 풍욕도 했다. 책임감에 불타 실행력이 과한 열혈 엄마였다. 당연히 나만의 외출은커녕 잠시라도 마음 편히 발 뻗고 멍 때릴 시간조차 없었다.

전전긍긍하던 어느 날 갑자기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가슴이 답답해져 숨쉬기가 버거울 때가 생기기 시작했다. 난 자매가 없고, 친정엄마는 다른 지방에서 일하시느라 바쁘셨다. 친구들은 사회에서 경력 쌓기에 바빠 내 처지를 털어놓기는 생뚱맞은 듯했다. 쑥쑥 커가는 아이들은 사랑스러웠지만, 공감받지 못한 채 오랫동안 소외된 내 안의 자아가 자꾸 아프다고 신호를 보냈다.      

아마 그렇게 속병이 생기려던 그 무렵, 오가며 인사만 주고받던 이웃들이 말을 걸어주기 시작했다. 어떨 땐 아이들의 안부로, 또 어떨 땐 차 한 잔 함께 하자고 청해주었다. 메마른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난 이웃들의 호의를 고맙게 맘껏 받아들였다.      


이웃들도 대부분 홀로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우리는 부침개, 식혜, 열무김치 같은 음식을 곧잘 나누며 사는 이야기를 시시콜콜히 나누었다. 아이들도 내 아이, 네 아이 가르지 않고 서로 먹였고 같이 놀렸다.

시원한 열무김치에 나물들을 양푼에 넣고 썩썩 비벼 함께 점심 한 끼를 해결하는 일은 늘 즐거운 일이었다. 어느새 숨쉬기가 편안해졌고, 이유 없는 눈물도 멈추었다. 단절되어 섬처럼 산다던 서울 아파트 살이에 대한 소문은 적어도 내겐 사실이 아니었다. 


두 돌 무렵이던 작은 아이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간격을 두고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동네병원에서 장중첩이 의심된다고, 8시간 내에 장을 풀지 못하면 괴사가 시작된다고 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간신히 정신을 챙겨 큰 병원 응급실로 내달렸다. 응급처치 직전에, '처치 중에 발생한 모든 부작용에 대해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서약서에 사인을 하는데 손이 파르르 떨리고 아이가 혹시 잘못될까 봐 두려웠다. 다행히 아이는 별 탈 없이 장을 풀었다. 

저녁 늦게야 한숨 돌린 나는 그제야 위층 이웃에게 부탁한 큰 애의 안부를 물으러 전화를 했다. 짜장면 잘 먹고 형들과 잘 놀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이웃의 목소리를 듣는데 울음이 폭 터졌다. 고마움과 안도감이 뒤섞인 눈물이었지 싶다. 나는 서로 의지하고 사는 법을 그렇게 동병상련하던 이웃들에게서 배웠다.

이웃들과 나누었던 건 음식과 정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린이 집에 갈 정도로 큰 후엔 주말농장을 함께하며 당근과 상추와 토마토, 깻잎을 길러 나누었다. 농장에 갈 때는 분명 일하러 가는 것인데 새털 같은 마음이 둥둥 먼저 나섰다. 

우리의 관심은 아파트 일로도 뻗어나가, 주민을 하대하며 장기 집권하던 관리소장을 사퇴하게 만들기도 했다. 부녀회를 만들어 여론을 형성하고, 입주자 대표회의를 맡아 3년 만에 얻어낸 성과였다. 내가 사는 곳의 문제를 나와 이웃들이 직접 해결해 냈다는 뿌듯함과 자부심이 컸다. 

같은 아파트 생활 15년여 만에 두 분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셨지만, 여전히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분들은 짬을 내어 뒷산과 현충원에 함께 다닌다. 한동안 적조하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칠라치면 안부를 묻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저 동네 소식과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인데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진다.      

'나를 아는 이웃들이 있고, 내가 궁금하게 여기는 이웃들이 있는 곳, 그래서 나는 이곳에 속해 있구나' 뭐 이런 기분이 드는 것 같다. 같이 키운 윗집, 옆집 아이들이 이젠 대학생, 고등학생이 되어 길에서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아는 체라도 해주면 어찌나 뿌듯한지. 보낸 세월이 아쉽지 않고, 나이 든 게 억울하지가 않다.

독박육아로 허우적대던 내게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재미를 알게 해 준 곳. 서울을 떠났다가 돌아오면서 우리 동네의 큰길과 익숙한 건물들이 멀리서 보이기만 해도 푸근해진다. 아마 그 곳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지 싶다. 언제부터인가 자꾸 고향이라 부르고 싶어지는 그 곳에 말이다. 
덧붙이는 글 기사공모
#서울 아파트 살이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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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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