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5월 8일 오전 6시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한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청년 김기설 전민련 사회부장의 영결식 행렬이 1991년 5월 12일 신촌사거리를 지나고 있다.
현장사진연구소 이용남 사진가
날이 훤히 밝았다. 동쪽 하늘에는 오월의 태양이 떠올랐다. 서울로 올라온 지 넉 달. 이제 신촌 거리는 눈에 익숙했다. 연세대 방향으로 올라가려다 방향을 바꾸었다. 연세대에서는 왠지 아는 얼굴을 만날 것 같았다. 길을 건너 신수동 방향으로 올라갔다. 손에는 가방이 하나 들려 있었다.
어느새 서강대 정문에 다다랐다. 아직 학교는 고요했다. 연일 계속된 시위 때문인지 교정에는 최루탄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청년광장을 가로질러 건너편 큰 건물을 향했다. 서강대 본관이었다.
현관을 지나 계단을 한 발 한 발 올라갔다. 여러 얼굴들이 떠올랐다. 성남 민청련의 선배들, 강경대의 죽음 이후 꾸려진 범국민대책위 상황실의 동지들 그리고 뒤늦게 운동권이 된 아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님…….
전민련 사회부장을 맡아 뛰어다니던 일들도 떠올랐다. 특히 원진레이온의 산재 노동자들과 속초 동우전문대 학생들이 생각났다.
본관 4층 계단을 올라 옥상 입구에 도착했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난간에서 한참을 내려다봤다. 입고 있던 재킷을 벗었다. 재킷 안주머니에 있던 유서를 꺼내 다시 읽어봤다. 한 장은 동지들께 그리고 또 한 장은 부모님께 남긴 글이었다.
유서를 다시 안주머니에 넣었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통을 꺼냈다. 거기에는 시너가 담겨 있었다.
잠시 후 "노태우 정권 퇴진하라! 민자당은 해체하라!"는 외침과 함께 불길에 휩싸인 그가 지상으로 떨어졌다. 1991년 5월 8일 오전 8시, 그의 이름은 김기설, 스물여섯의 나이였다.
"기설아, 도대체 왜 죽겠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