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의 시작을 알리는 오목교역계단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마음을 단단하게 먹는다.
신재호
아파트 입구를 벗어나면 작은 도로 넘어 빵집이 보인다. 한 달 전쯤 새로 생겼다. 가끔 아내가 사 와서 먹었는데, 맛이 괜찮았다. 유리창 너머로 젊은 사장님이 분주히 움직였다. 나와 같이 아침을 시작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묘한 위로가 되었다.
역에 다다라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가면 안내 화면 속으로 이제 막 전역을 출발한 전철의 모습이 보인다. 편리한 세상이다. 막연히 기다린 시간이 줄었다. 좋으면서도 불편했던 시절의 아쉬움도 남는다. 모르는 것이 주었던 설렘도 있었으니까.
출근길은 서울에서도 지옥철로 유명한 5호선, 2호선, 4호선을 모두 거친다. 오목교역을 출발해서 영등포구청역에 내리면 거대한 에스컬레이터가 보인다. 천천히 타고 가면 좋으련만, 급한 마음으로 꼭 걸어 올라간다. 숨을 헐떡거리며 통로를 지나면 2호선 환승 구간에 다다른다.
대기선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초조하게 시계를 바라본다. 이번 열차를 놓치면 회사까지 간당하다. 열차가 도착했고, 문이 열리면 있는 힘껏 몸을 밀어 넣는다. 잔뜩 구겨진 과자 봉지처럼 금세 찌그러진다. 출입문에 바싹 붙어 사지가 어디로 가있는지도 모르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그나마 신도림역에서 구로디지털단지역을 지날 때쯤엔 사람들이 많이 내려 붙어있는 손발을 확인한다. 하지만 이내 서울대입구역부터 슬슬 사람이 들어찬다. 이때부터는 공간의 싸움이다. 지키려는 이와 빼앗으려는 자의 처절한 사투가 벌어진다. 곳곳에 '악' 소리도 터져 나온다. 부실한 넓적다리에 강한 힘이 주입된다. 그러나 감당도 못 하고 후들거렸다. 이 모든 사태는 이제 곧 내릴 사당역 때문이다.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어깨에 강한 진동을 느끼며 귓가에 '둥둥둥' 북소리가 들렸다. 파도에 휩쓸리듯 밀리고 밀려 겨우 문밖으로 튕겨 나왔다. 이게 끝이 아니다. 정신을 단디 차려야 한다. 저 멀리서 열차를 타려 달려오는 구름 떼를 뚫고 4호선 환승 구간으로 진입해야 한다.
하나의 계단을 무사히 넘었다. 마지막 구간을 넘을 무렵 더 큰 인파와 마주했다. 초점 잃은 텅 빈 눈동자, 오로지 탑승만으로 갈구하는 굶주린 좀비 같았다. 어깨, 팔, 다리, 심지어 얼굴까지 퍽 퍽 퍽. 찰나의 순간, 신기루처럼 모두 사라지고 너덜한 몸뚱이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