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의 부친 최영섭의 <바다를 품은 백두산> 중...최재형의 부친 최영섭은 “아버지는 2002년 10월 13일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지만 감옥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훈장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김학규
기자가 지적한 기사 내용은 "2002년 10월 13일에 대통령표창을 받지 않았다"는 게 아니었습니다.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2002년 10월 13일에 대통령표창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자는 할아버지 최병규가 항일독립운동이 아닌 다른 사유로 대통령표창을 받았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뒀고, 그래서 기사를 내기 전 최재형 후보 측에 '최병규가 2002년 10월 13일에 대통령표창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 만약 받았다면 공적개요를 확인해줄 수 있는지'를 미리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최재형 후보 측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다가 기사가 나간 후에야 "2002년 10월 13일에 대통령표창을 받았다"고 하면서 기자가 마치 오보를 낸 듯한 황당한 해명을 했습니다.
해명의 엉뚱함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부친 최영섭이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고 한 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다만, 대통령 표창 사유에 대해 고 최영섭 대령의 착오가 있었다"고 은근슬쩍 별일 아닌 듯이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부친 최영섭의 설명이 너무 구체적입니다.
독립유공자에 주는 건국훈장은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등 5개 등급으로 나뉘어 있고, 건국포장과 대통령표창이 더 있습니다. 최영섭은 아버지 최병규가 건국훈장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항일독립운동 공로"는 인정받았지만, "감옥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준은 존재하지도 않고 2002년 당시 상황에도 맞지 않습니다.
1920년 일경의 거미줄같은 감시망을 뚫고 일으킨 '3.1 만세운동 1주년 기념투쟁'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구속된 박양순(1903-1972)을 비롯한 23명의 배화여고보 학생들은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1개월여 만에 석방되었음에도 대통령표창조차 받을 수 없었습니다. 박양순은 독립유공자 선정 기준이 바뀐 2018년에야 겨우 대통령표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박양순은 2019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에서 유관순의 8호실 여감방 동료로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다시 최병규의 대통령표창 이야기로 돌아가봅시다. 최재형 후보 측이 뒤늦게 공개한 대통령표창 확인서에는 사유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상기인은 투철한 국가관과 통일애향의 사명감으로 군민회 조직 활성화 강화에 앞장서 왔으며 특히 향토 문화 발굴사업에 참여, 군민지를 발간 군민회 발전에 기여 '정부표창기준' 제16조에 따라 .....
일제강점기이던 1942년에 평강군수의 지시를 받아 <평강군지>를 만들었던 아버지 최승현에 이어 1984년에 <평강군지>를 발간한 일을 높이 평가받아 대통령표창을 받은 모양입니다만, 공적개요에 '항일독립운동 공로'를 인정한다는 것으로 오해할 만한 대목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최재형 후보에게 다시 묻고 싶습니다. 할아버지가 평강군민회 발전에 기여한 공적으로 받은 '대통령표창'을 보고 '항일독립운동 공로로 받았다'는 '착오'를 일으킬 만한 사람이 대한민국 사람 중에 몇 명이나 있을까요?
조상을 소환한 것은 최재형 후보 자신입니다
최재형 후보 공보특보단은 "후보자 개인에 대한 검증과 비판은 달게 받겠지만 과거의 조상까지 끌여들여 비정상적 논란을 확대하는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최재형 후보의 조상에 관심을 갖게 한 것은 최재형 후보 자신이라는 걸 정말 모르시는 건지요.
기자는 사실 최재형 후보가 감사원장을 할 때도 그를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선에 출마한다는 소식을 접했고, 언론에 '할아버지는 독립유공자고, 아버지는 대한해협전투의 영웅'이라며 '3대에 걸쳐 형성된 품격 있는 집안'으로 계속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사실이 아닌 보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면 '미담제조기' 최재형 후보께서 직접 나서거나 보도자료를 통해 이를 수정하도록 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랬다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을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보도가 연일 이어졌습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고, 특히 독립운동을 한 분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강한 저는 '최재형 후보의 할아버지가 어떤 분일까?'라는 호기심이 일어났습니다. '보훈처 공훈록'을 자연스럽게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보훈처 공훈록에는 평강 출신의 최병규가 없었습니다. 이게 취재를 시작한 계기였습니다.
기자가 최재형 후보의 집안 내력을 일부러 파헤친 게 아니라, 최재형 후보의 '집안 자랑'이 기자로 하여금 할아버지 최병규를 넘어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평강분국장과 친일단체 '유도천명회'의 평강지회장, 평강군 유진면장 등을 지냈던 증조할아버지 최승현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도록 만든 것입니다.
기자는 최재형 후보의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의 이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평강의 유지에 불과한 인물이 중앙일간지에 이렇듯 많은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이 놀라웠다는 말씀 아울러 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도 집안을 곧추세우는 목적이든 개인의 입신양명이든 '출세를 위한 야망'을 가지고 있던 인물에게 주로 보이는 현상이라는 점도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최재형 후보 측은 이를 반박하며 "일제시대 당시 지식인들은 각자 위치에서 고뇌하며 살아왔다. 특정 직위를 가졌다고 해서 친일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런 식이라면 흥남에서 농업계장을 한 문재인 대통령의 부친도 친일파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라고 엉뚱하게 문 대통령의 부친을 소환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최재형다움의 정직'을 포기하고 본질을 회피하면서 진영논리에 기대보려는 어리숙한 정치 행위로 비칠 뿐입니다. '국민통합의 적임자'라는 최재형 후보의 모토마저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역사는 쉽게 조작하거나 왜곡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