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일대 대장지구 개발 사업으로 공사중인 현장들이 보이고 있다.
이희훈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손목 시계는 밤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에게 다시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우선 밤 10시까지 기다리겠다고. 이미 다섯 차례 넘는 통화버튼을 누른 후였다. 기다리던 답장은 없었다.
지난 28일 밤 경기도 수원 컨밴션센터 앞. 우리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1시간 30분이 넘어, 그의 지인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고, 수화기 너머로 지인은 놀라워했다. 결국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대선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경기도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핵심인물로 꼽힌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당과 보수언론 등에선 수천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개발 이익이 일부 민간사업자들에게 돌아가게 한 인물로 유 전 본부장을 지목하고 있다. 야당에선 유 전 본부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핵심 측근이라면서, 사실상 '이재명 게이트'라고 주장하고 있다.
[6시간 전] "나를 무슨 거악으로 만들어놓고... 프레임 짜놓고 필요한 내용만 보도"
그와 연락이 닿은 것은 이날 오후 3시께. 기자의 취재원 연락처에 없는 번호가 찍였다. 유 본부장이었다. '그간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말하자 그는 "정말 조용히 살고 싶었다"는 말부터 꺼냈다.
'지금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나'라고 물었고, 그는 "억울하다"고 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차분 했지만 가끔식 목소리 톤이 올라가기도 했다. 특히 그를 둘러싼 언론보도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일부 보수언론 기자들로부터 대장동 사업에 대한 이야기해달라고 연락받을 때만 해도, 이처럼 사안이 커질지 몰랐다는 것이다.
유 전 본부장은 "일부 기자에게 연락을 받고 대장동 사업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다"면서 "어떻게 공영개발로 할 수밖에 없었는지, 당시 성남시의 상황과 민관합동개발을 통해 어떤 이익을 얻었는지 등을 설명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기자들은 어떤 프레임을 짜놓고 자신들이 필요한 내용만, 일부는 사실과 다른 보도를 냈다"고 토로했다.
유 전 본부장은 "어느 순간 나는 대장동 개발의 설계자로, 무슨 거대한 악으로 묘사돼 있었다"면서 "이후 언론들의 집요한 취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핸드폰 번호를 바꿨다"고 말했다. 이어 "그랬더니 이번엔 언론에서 내가 '잠적했다'고 쓰더라"라고 덧붙였다. 최근 일부 언론은 유 전 본부장이 휴대폰을 바꾸고,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사실 그는 지난 23일 이미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통해, 당시 성남개발공사가 민관합동으로 대장동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과정을 설명했다. 또 성남시가 사업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5500억원에 달하는 이익을 환수하는 과정, 이후 최근 몇년 새 부동산 폭등에 따른 민간 이익 발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내비쳤다. 그런데도 지속적으로 잠적설과 핵심설이 나오는 것이 불만인 듯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유 전 본부장은 "당시 기획본부장으로 일을 했지만 내가 혼자 그 사업을 설계하고 집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했다. 공사 설립부터 대장동 사업진행을 위한 민간과의 협력 또한 적법한 절차에 따랐다는 것이다.
유 전 본부장은 "최근 변호사를 선임했다"면서 "나와 관련된 잘못된 보도 등을 포함해 여러 내용들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더이상 전화 통화로만 궁금증을 풀기 어려웠다.
또 언론과 야당 등에선 유 전 본부장의 과거 이력을 비롯해, 화천대유 인사들과의 연관성까지 여러 의혹을 제기하고 있었다. 그에게 직접 만나자고 했다. 그 역시 흔쾌히 응했다. 유 전 본부장이 직접 시간과 장소를 정했고, 기자에게 "(자신과 관련된 의혹들에 대해) 다 말씀드리겠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그날 밤, 그는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검찰의 압수수색과 출국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