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통지표 배부일인 지난 2020년 12월 2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해성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수능 성적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해마다 수능 감독을 하다 보면 깨닫는 사실이 하나 있다. 시험실마다 검정고시 출신과 특성화고 졸업생이 적지 않다는 것. 다소 차이는 있을지언정 한 시험실의 28명 응시생 중에 최소 네다섯 명은 된다. 숫자로만 치면 재수생들 못지않다.
검정고시 출신이 느는 건 딱히 놀랍지 않다. 오로지 수능 준비에 전념하기 위해 일찌감치 자퇴를 선택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고, 정시의 비중을 늘린다는 정부 발표로 늘어나는 추세다. 기숙학원에 등록하거나 집중 과외를 통해 단시간에 수능 점수를 올리려는 전략이다.
수능에 승부를 건다면 자퇴만 한 방법이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수능 위주 전형의 폐해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히지만, 대학입시에 목매단 현실에서 잘못된 선택이라고 잘라 말할 수도 없다. 물론 가정 형편이 뒷받침되지 않고선 어림도 없는 선택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수능에 응시하는 특성화고 출신이 시나브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전국의 특성화고마다 대학입시 대비반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정 분야의 고졸 인재 양성을 위한 직업교육 기관이라는 특성화고의 설립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그러다 보니 내신 성적 관리를 위해 부러 특성화고를 선택하는 영악한 중학생들도 있다. 학생부종합전형 등 수시 대비도 유리하고, 수능에 직업 탐구 영역이 마련되어 있어 정시에도 불리할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목적지가 대입이라는 점에서 인문계고와 별반 차이가 없는 셈이다.
요즘엔 특성화고마다 대학입시 대비반 아이들을 우선 배려해 학사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을 위한 별도의 강좌를 개설하는 등 입시 실적을 높이기 위해 신경을 쓴다는 거다. 마치 인문계고에서 교육과정을 편성할 때 상위권 아이들을 은연중에 우대하는 것과 흡사하다.
대입이 특성화고의 존재 이유조차 허무는 형국이다. 특성화고 졸업생의 일자리는 최저시급을 받는 알바가 전부라는 자조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특성화고 노동조합이 꾸려져 정부를 향해 고졸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해달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겠는가.
대학 졸업장이 '디폴트 값'인 나라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유산이 있다면 모를까, 우리나라에서 대학 졸업은 취업을 위한 '디폴트 값'이다. 일단 대학은 졸업해야 이력서라도 쓸 수 있다. 자정까지 아이들을 학원과 독서실로 조리돌리는 숨 막히는 대입 경쟁은 명문대를 향한 것일 뿐 여느 대학들과는 별 상관도 없다.
대안적인 삶을 꿈꾸며 대안학교(고등 과정)에 진학한 우리 아이조차 공고한 대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장 코로나가 창궐한 탓이지만, 작년에 학교를 졸업한 뒤 수능 준비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갭이어(Gap-year)' 삼아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 했지만, 기회 자체가 없었다.
졸업 후 몇 달 동안 배낭여행을 떠날 계획도 세웠고, 사회에 나갈 준비 삼아 여러 단체에서 일을 배울 생각도 있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더 공부하고 악기를 연습해서 무대에 설 욕심도 부렸다. 그런가 하면, 취업해서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생활비를 벌겠다고도 했다.
여행도, 단체 활동도, 공연도, 취업도 모두 막힌 상태에서 주어진 황망한 여유를 아이는 쉽사리 감당하지 못했다. 종일 집에 갇혀 유폐된 생활을 못 견뎌 했다. 코로나로 재택 수업을 받는 학생과 딱히 처지가 다를 건 없지만,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불안감이 그를 옥좼다.
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이 부러웠던 걸까. 이내 수능을 준비하겠다며 대입 관련 정보를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대입에 어떤 전형이 있는지도 몰랐던 아이였다. 수능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 그의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수능 대비 문제집들이 여전히 낯설다.
근래 대학 진학률이 완만한 하향 추세를 나타내고 있는데, 아이가 졸업한 대안학교의 경우는 외려 늘어나는 모습이다. 일반 인문계고와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얼추 둘 중 한 명은 대학에 진학하는 모양새다. 재수하는 경우를 포함하면, 여느 학교들 못지않을 성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