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잡초제거 중
전찬혁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할머니가 차려주신 뭇국과 불고기를 한 그릇 뚝딱 먹고 바로 밭에 투입되었다. 할아버지께서 갈아 놓으신 밭에 비닐을 씌우고 씨감자도 심었다. 하루종일 허리 굽혀 일했는데, '비닐을 씌우고 씨감자도 심었다' 딱 이 한 줄로 요약할 수밖에 없다니… 이 일은 다음 날도 하루종일 이어졌다.
"아이고"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내가 혼자 심은 씨감자만 40킬로그램 정도였다. 이거면 다행인데 씨감자 심기가 끝나니 쪽파 모종 심기로 종목이 바뀌었다. 그 후로도 어느 주말엔 하루종일 당근을 뽑고, 또 어느 때엔 대파만 줄곧 판다. 해가 지면 일이 끝날 줄 알았더니 뽑은 대파의 흙을 털고 다듬어 무게 맞춰서 저울 달아 묶고 포장하기가 이어진다.
그 후로도 주말이면 자주 우리 가족은 할머니댁 밭일을 거들었다. 힘든데 왜 기분이 좋았을까?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과 깨달음이 순간순간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밭일은 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내가 한다. 어느 날은 할머니께서 직접 밭에 나오셨는데, 할머니 말씀으로는 쪽파를 심으러 나왔다고 했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눈치를 챘다. 할아버지 감시가 주된 목적이라는 걸. 할아버지 나이가 돼도 땡땡이는 어림없는 거구나! "풋"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뭔가 삶이라는 건 살아 있는 한 살아가야 한다는 걸 느꼈다고나 할까!
내가 밭일을 하며 가장 집중하는 부분은 간식이다. 사람이 이렇게 단순해질 수 있구나를 느끼지만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가 된다. 어느날은 동생이 간식으로 초코파이와 망고맛 음료수를 가져왔는데 밭에서 건네받는 이 간식은 당연히 꿀맛이며, 드물게 동생이 이뻐 보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핸드폰과 한몸이던 내가 알게 된 노동의 기쁨
주말에 가족이 다 같이 시골로 가지 않는 평범한 주말 풍경은 이렇다. 나랑 동생은 방에서 주로 핸드폰을 하고, 어머니도 역시 안방에서 누워 계시다 밥 시간이 되면 우리 밥을 차려주시고 다시 침대와 한 몸이 되신다. (이게 기사로 나가면 어머니가 눈을 흘기시지 않을까!) 아버지는 주말에도 별일 없으면 회사에 출근하신다.
솔직히 이런 주말도 나쁘진 않다. 핸드폰과 한 몸이 되는 기쁨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분명한 건 시골에서 농사 짓는 주말도 썩 괜찮다는 것이다. 밭에서 몸 움직이고 땀 흘리는 와중에 코로 들어오는 당근 냄새, 대파 냄새, 온갖 풀 냄새와 흙 냄새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이게 노동의 기쁨인가 싶다.
우리 왔다고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차려 내시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마디가 눈에 들어오고, 할머니의 감시(?) 속에서도 묵묵히 할 일 하시는 할아버지의 둥근 등이 든든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