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 희생자 조경철씨 어머니 박미화씨는 아들이 쓰던 방을 그대로 보존해두고 있다. 방에는 고인의 영정사진과 생전 사진, 유품 등이 놓여 있다.
권우성
"저는 어릴 때부터 웃는 상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지내왔습니다. 너무 웃어서 주변에서 '너무 웃으면 안 된다'고 혼을 낼 정도로 웃는 상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제가 너무 웃는 게 싫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다보니 힘들어도 웃는 제가 좋습니다."
두 해 전 조경철(28)씨가 작성한 이력서의 첫 대목이다. '웃는 상'이라고 표현한, 경철씨의 방에는 그의 말마따나 환하게 웃는 얼굴 사진들이 붙어있다. 그 아래에는 경철씨가 이제껏 사용한 안경들, 군대 군번줄이 나란히 진열돼 있다. 경철씨가 중학교 때부터 쳤다는 기타도 한 편을 차지하고 있다.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경철씨가 사놓고 아직 한 번을 못 써 본 녹음용 마이크도 서랍에 기대어져 있다.
사진 중에는 이태원에서 찍은 사진도 있다. 경철씨는 2020년에도, 2021년에도, 2022년에도 핼러윈 데이를 맞아 이태원을 방문했다고 한다. 2022년에 찍은 사진 속, 분장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는 경철씨는 분홍색 후드티를 입고 있다. 그 옷이 사진 아래 고이 개어져 있다. 그 위에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이 붙었다. 3년 내내 방문했던 이태원, 그러나 이번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엄마 나이 스물셋에 낳은 둘째 아들. "돈 많이 벌어서 엄마 호강시켜준다던" 애교 많은 아들. "3층 건물을 사서 1층은 가게 하고 2층은 우리가 살고 3층은 작업실을 삼는다"던, 미래 속에 언제나 엄마의 자리를 그려두며 "평생 엄마랑 함께 살 거"라던 경철씨가 이제 없다. 밤에 출근하는 엄마를 가게까지 바래다주고 집에 돌아와 '나 집에 왔어 걱정말고 일해'라며 살뜰히 챙기던 경철씨는 엄마를 "미화씨"라고 부르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7남매를 키우는 엄마에게 경철씨는 '버팀목'이었다.
"경철이는 제 남편이자, 아들이자, 영원한 껌딱지였죠...'미화씨'라고 제 이름 불러주고, 제가 누워있으면 옆에 와서 파고들고 팔베개해주고 그랬어요. 아휴... 날이 갈수록 더 그리워져요."
지난 13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 자택에서 만난 경철씨 어머니 박미화(52)씨는, 아들의 빈 방 앞에서 망연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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