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참사로 사망한 고 엄정정(25)씨의 어머니 이순희(54)씨가 딸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김성욱
연변 출신 중국동포(조선족) 이순희(54)씨는 2002년, 남편 엄아무개(56)씨는 2006년 한국에 왔다. 중국에서 했던 식당과 장사가 잘 안 된 터였다. 주변에선 한국에 가면 말도 통하고 돈벌이도 더 낫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이씨는 식당에서, 엄씨는 공사장에서 "휴일도 없이 닥치는 대로" 일했다.
부부에겐 중국에 놓고 온 1999년생 딸이 있었다. '깨끗하고 평안하다'는 뜻의 이름 '정정'은 할아버지가 지었다. 딸은 방학 때마다 한국에 와 엄마 아빠를 보고 돌아갔다.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딸이 매해 학급 대표로 칠판 판서를 도맡는다는 말에 부부는 시름을 덜곤 했다. 입버릇처럼 "내 걱정 말라"던 딸은 초등학교 교사가 될 수 있는 사범대에 진학했다.
엄씨 부부도 차츰 한국에서 자리를 잡아갔다. 둘이 모은 돈으로 2015년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중국음식점을 차렸다. 첫째 딸 정정과 열한 살 터울의 둘째 딸도 낳았다. 투룸 빌라 집도 얻었다. 이대로면 두 딸 결혼 때까진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가 터졌다. 방학 때면 한국에 건너왔던 첫째 딸을 2년간 볼 수 없었다. 식당은 2022년 결국 폐업했다. 이씨는 다시 보험회사에 취직했고, 엄씨는 공사장으로 돌아갔다.
코로나가 끝난 뒤에야 마주한 첫째 딸은 부쩍 가족들과 떨어지길 싫어했다. 어느덧 성인이 된 딸은 방학 때 한국에 잠깐 머무는 동안에도 부부의 집에서 가까운 시화 공단에서 일용직으로 공장을 다니면서 생활비를 충당했다.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한 딸은 이제 자기도 엄마, 아빠, 동생과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딸은 중국 생활을 접고 지난 3월 말 한국에 왔다. 투룸이라 중학생 동생과 한방을 써야 했는데, 불편해서 8월에는 가족 모두 시흥의 방 세 칸짜리 아파트로 이사하기로 했다. 첫째 딸까지 한국에 정착하기로 하면서 엄마와 아빠는 영주권 신청을 했다.
딸은 한국에서 네일아트 자격증을 따겠다고 했다. 필기시험을 봐야 해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딸은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손 벌리지 않겠다며 집에서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았다. 그러다 아는 언니로부터 '공장인데 앉아서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공장이었다.
엄마·아빠와 함께 살려고 한국에 온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