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짜리입니까> 필진들. 국회로 간 6411의 목소리 행사 당시.
노회찬재단
- 이 책의 필진은 무려 75명이다. 물류센터 직원, 도축검사원, 번역가, 대리운전기사, 사회복지사, 농부, 건설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노동을 기록했는데, 필진 섭외를 비롯해 책이 나오기까지 그 과정이 만만찮았을 것 같다.
"필자 발굴에는 정답이 없을 뿐 아니라 매우 다양한 루트로 받고 있기도 하다. 우선 투고를 받는다. 6411voice@gmail.com으로 원고지 12매 분량의 글을 보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또 이 프로젝트에는 원고를 편집하고, 필자와 소통하며 조언하는 12명의 편집자문위원이 있는데, 한 달에 한 번 회의를 통해 필진을 추천받기도 하고 편집자문위원들이 삶의 현장에서 섭외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본인이 사는 빌라 건물을 청소하시는 분께 글을 한번 써보시겠냐고 묻는다거나, 20년 동안 단골로 다녔던 미용실 사장님께 제안하기도 한다. 물론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필진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꽤 있다.
하나의 정형화된 유형이 있는 건 아니고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갖고 두드리는 셈이다. 최근에는 노동에 국한하지 않고, 성소수자, 이주민, 재외동포, 난민 등 우리 사회에 목소리를 낼 공간이 없는 다양한 분들까지 확대해서 발굴하고 있다."
- 책으로 나오기까지 어려움이나 고민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
"책으로 출간해야겠다고 생각했을 즈음에 대략 100호까지 연재되었던 터라, 100호까지 묶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00개의 목소리를 담는다는 점에서 어떤 상징성도 있다고 보았다. 다만 100편을 다 담으면 책이 너무 두껍다는 출판사의 의견에 따라 75편만 넣기로 했는데, 처음엔 75편을 어떻게 고를 것인가가 주요한 고민이었다.
논의 끝에 100개의 목소리 중에 75개를 고르는 건 맞지 않다, 더 좋고 더 나쁘다는 차원으로 접근할 수는 없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었다. 결국 1호부터 75호까지 순서대로 넣고 그 뒤의 목소리는 나중에 또 다른 책으로 묶는 것으로 결정했다.
처음엔 책에 필자들의 글과 함께 문인이나 전문가들의 서평을 담으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마저도 없애는 것으로 했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는 6411의 목소리가 주인공이다. 그 취지가 흔들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고, 출판사에서도 흔쾌히 동의해 주어서 무사히 책이 나올 수 있었다."
- 75개의 사연 중에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하나를 꼽는 건 나로선 너무나 어려운 문제고, 다만 이 말씀을 드리고 싶다. 독자 입장에서 보면 순서대로 한 편씩 읽는 것도 좋겠지만, 보다 보면 특별히 눈에 머무르는 글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는 결코 노동현장의 우울함이나 억울함에 관한 얘기만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우리 사회의 부족한 점이나, 개선되어야 할 부분에 관한 내용도 있지만 노동의 당당함을 표현한 글이나,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그 노동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담은 글도 꽤 있다. 사람마다 노동의 의미, 삶의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독자분들의 관심사와 맞거나, 특히 오랫동안 서성이게 하는 글이 있다면 그 필자의 목소리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시고, 활동을 응원하고, 행사가 있다면 함께 참여해 주시면 좋겠다."
노회찬이 평생 이루고자 했던 꿈
- <나는 얼마짜리입니까>에는 닫는 글을 대신해 노회찬 대표의 2012년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수락연설문이 실려있다. 당시 노회찬 대표께서는 6411번 버스의 의미를 통해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진보정의당이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로부터 12년이 더 지난 지금 6411번 버스를 타야만 하는 노동자의 삶은 결코 더 나아지지 않았다. 진보 정당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한 것 같고. 과연 노회찬의 정신은 아직 살아있는지, 과연 우리 사회가 노회찬 정신을 회복할 수 있을지 여쭙고 싶다.
"10년이 굉장히 길다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10년이 별로 길지 않은 시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웃음) '노회찬의 정신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노회찬이 바라보고 노회찬이 머물렀던 사람들의 땀과 눈물을 닦아주는 것, 그들의 곁에서 함께 비를 맞겠다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노회찬이 만들고자 했던 진보 정당이란 그들이 필요로 할 때 그들의 손에 닿는 거리에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정신이 지금이 실현이 됐니, 안 됐니, 지금 진보정치가 어렵니, 정치가 어수선하니, 이런 차원의 문제를 떠나 그냥 우리가 계속 추구해야 하는 가치라고 보는 입장이다. 진보 정당은 물론이거니와 정치라는 것 혹은 정당이라는 것이 바라보아야 하는 근본적인 목표와 노회찬의 정신이 맞닿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꼭 노회찬이라는 말을 떠나 다르게 표현하더라도 이것이 노회찬이 삶을 통해 평생 이루고 싶어 했던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니 나와 노회찬 재단은 왜 현실이 금방 바뀌지 않냐고 한탄하거나, 미래를 낙관하거나 혹은 비관하기보다 그가 이루려고 했던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행동하고자 한다."
- 만약 노회찬 대표가 이 책을 본다면 뭐라고 했을까?
"그런 질문을 진짜 많이 받는데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 다만 나는 이 책 뒤표지에 실린 손석희 님의 추천사, '여기 글쓴이들은 그 삶 속에서 이미 노회찬의 대답을 듣고 있다. (중략) 글쓴이들이 모두 노회찬들이다'라는 대목을 언급하고 싶다. 나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다. 그러니 '이 책을 노회찬이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라는 질문보다는 이 책에 실린 목소리 그리고 여기에 실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목소리들에 좀 더 집중해 주었으면 한다. 그들이 결국 노회찬이고, 노회찬의 생각이며, 노회찬의 대답이라고 나 역시 생각한다."